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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개헌, 이번 기회마저 놓쳐선 안 된다

이미 역사적 소임 다한 ‘87년 체제’ 국민 총의 담아낸 개헌안 내놔야… 대선주자들 유불리만 따지지 말길

개헌론의 빗장이 열렸다. 그동안 “개헌 논의는 사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며 개헌에 소극적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임기 내 개헌’ 입장으로 급선회해서다. 20대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200명 가까운 의원이 개헌론자일 정도로 개헌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까지 힘을 실으면서 개헌은 앞으로 정치의 최대 화두가 될 게 분명해졌다. 다만 최순실·우병우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 박 대통령이 갑작스레 개헌 논의를 공식 제기한 건 정치적 논란을 부를 만했다. 시정연설 전에 여야 지도부를 불러 성실히 취지를 설명했다면 진정성을 의심받지는 않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은 개헌이라는 대의에 비하면 아주 소소한 시비에 불과하다. 대통령 5년 단임제로 대표되는 이른바 ‘87년 체제’의 문제점은 오래 전부터 정치권과 학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단축까지 약속하면서 원포인트 개헌 공론화를 시도한 이유도 대통령과 국회 임기 불일치에 따른 비효율의 정치를 청산하는 데 있었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산물인 87년 체제를 끝내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당리당략에 따라 좌절돼 지금에 이르렀다. 박 대통령의 개헌 제의는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대통령 5년 단임제의 폐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책의 연속성이 떨어지고, 국가의 장기 계획을 세우는 정책 마련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전 정부의 핵심 정책이 현 정부에서 부정되는 사례를 수없이 경험했다. 개헌은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시대적 과제다. 지난 30년간 87년 체제 하에서 겪었던 ‘전부 아니면 전무’의 무한정쟁 시스템을 우리 아들·딸에게 그대로 대물림할 수는 없다.

새누리당은 물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도 “개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어서 개헌 움직임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관건은 어떤 내용을 담느냐에 달려 있다. 가장 민감한 권력구조만 해도 여야와 의원 개인의 입장에 따라 대통령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등 다양한 주의·주장들이 혼재해 있다. 합의점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분명한 건 제도마다 장단점이 있어 어느 제도가 ‘옳다’ ‘그르다’는 식의 접근법은 지양돼야 한다. 남북이 분단된 우리의 특수한 상황에 최적화된 권력구조가 우선 고려 대상이 돼야 함은 불문가지다. 그리고 대통령과 국회 임기를 일치시킬 경우 누구의 임기를 단축시키느냐 하는 것도 난제 중의 난제다. 만에 하나라도 대통령과 국회 임기를 일치시키지 않는 개헌이 이뤄진다면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축소·조정하는 것 못지않게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국회의원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 마련 또한 중요하다. 책임정치 구현과 주권재민 원칙을 보다 확고하게 하기 위해 기준 미달 국회의원의 지위를 박탈하는 국민소환제도 도입을 적극 추진할 시점이 됐다. 이미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에게 적용되고 있는 소환제도를 국회의원만 그 대상에서 제외시킨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 개헌 논의와 함께 선거제도를 포함한 정치제도 개선 작업이 동시에 이뤄져야 진정한 개혁이 완성된다.

개헌은 대한민국의 근본 틀을 바꾸는 국가 대계(大計)다. 일반 법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개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그런 만큼 국민 총의를 개헌안에 담아내야 한다.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기본권을 강화하고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시대 담론을 이끌어내야 한다. 대통령이나 어느 특정 정치세력이 주도해서는 실현되기 어렵다. 현 의석분포상 여야 합의 없이 개헌안 통과는 불가능하다. 개헌 이상 협치가 절실한 분야가 없다. 차기 여야 대선주자들도 개헌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 내년 대선에서의 유불리만을 따지면 국민의 외면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거기에 맞는 옷으로 바꿔 입어야 한다. 이건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번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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