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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낙태 처벌 강화 재검토에서 드러난 복지부 난맥상

정부가 불법 낙태 수술 의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려던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3일 불법 낙태 수술 집도를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하고 집도 의사의 자격정지 기간을 기존 1개월에서 최대 1년으로 늘리는 내용의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의료계와 여성계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한동안 잠잠했던 낙태 논쟁에 불을 붙이는 결과만 초래했다. 민감한 사회적 이슈임에도 의료계와의 사전 논의 없이 추진하다 일이 커지는 바람에 전면 후퇴한 것이다.

당초 복지부는 최근 사회문제가 됐던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 대리수술 등을 근절하기 위해 이를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명시하고 처벌 수위를 높일 작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적시한 8가지 유형에 별 고민 없이 불법 낙태 수술을 포함시킨 것이다. 그러자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모든 책임을 의료인에게 전가한다며 향후 낙태 수술 중단 방침을 밝혔고, 여성단체도 여성의 자기결정권 존중을 내세우며 시위를 벌였다. 파문이 커지자 복지부는 19일 의료계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한 뒤 최종 방향을 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재검토는 사실상 백지화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책상머리 행정의 난맥상만 노출한 셈이다.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는 불법 낙태는 원칙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 현행법에서도 유전적 정신장애·신체질환, 강간, 근친상간의 경우 등 5가지만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문제는 불법 낙태가 심각할 정도로 법이 사문화돼 있다는 점이다. 연간 17만명 이상의 태아가 사라진다. 국민인식조사 결과, 낙태 이유로는 원하지 않는 임신(43.2%)이 가장 많았고 경제적 사정(14.2%)도 컸다. 여기에는 사회적 냉대를 받는 청소년 임신이나 비혼(非婚) 임신 등도 포함될 게다. 이런 상황에선 처벌을 강화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낙태를 그나마 줄이려면 출산과 양육을 감당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여건부터 조성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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