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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신뢰의 위기에 봉착한 한국 대기업들

검찰에 고발된 현대차 대표, 생산 중단된 삼성전자 갤노트7… 롯데그룹·한미약품 등도 정신차려야

국토교통부가 현대자동차 대표이사를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해 싼타페 에어백 결함을 발견하고도 적법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함이 발견되면 국토부 보고, 일간지 공고, 차주 통보 등을 해야 하는데 현대차는 1년3개월이 지나서야 시정계획보고서를 제출했다. 실제 이 결함을 안고 출고된 차는 66대뿐이었다. 그런데도 정부가 고발이란 강수를 택한 것은 더 이상 현대차를 못 믿겠다는 뜻이다. 배경에는 이런 문제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쉬쉬해온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 현대차는 쏘나타 엔진 결함을 놓고도 미국에선 리콜과 배상을 모두 했지만 국내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갤럭시 노트7 생산을 다시 중단했다. 배터리가 또 문제를 일으켰다. 미국 중국 대만 등지에서 리콜로 교환한 제품의 발화 사건이 잇따랐다. 이번에도 제품 결함이라면 삼성전자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외신은 벌써 “갤럭시 노트7의 운명이 끝났다고 볼 수 있다”는 논평을 내놨다. 리콜한 제품마저 위험하다면 누가 삼성 휴대전화를 믿고 사겠나. 삼성과 현대, 한국을 대표하는 두 기업이 나란히 신뢰의 위기에 봉착했다. 한쪽은 제조업의 생명인 기술력이 의심받게 됐고, 다른 쪽은 경영의 원칙인 투명성에 상처를 입었다. 이것은 구조적인 저성장 위기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신뢰의 위기는 두 기업에 국한돼 있지 않다. 한미약품은 신약기술 수출 계약이 해지된 악재를 늑장 공시해 투자자의 신뢰를 잃었다. 연구개발 투자로 성과를 낸 집념의 기업이 하루아침에 못 믿을 회사로 전락했다. 한진해운 사태는 글로벌 물류대란을 일으키며 한국 해운업의 신뢰도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 화물선에 수출품을 실었던 수많은 기업이 해외 바이어와의 관계에 타격을 입었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롯데그룹 문제는 또 어떤가. 오너 일가의 치부와 불투명한 경영행태가 노출되며 재벌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한국 대기업은 이렇게 해외 시장에서, 국내 소비자에게, 경제성장 견인차라는 정체성마저 신뢰의 위기에 맞닥뜨렸다. 얼마 전 캐나다 화장품 메이커와 거래 중인 작은 무역업체 대표가 이런 일화를 전했다. 캐나다 메이커로부터 “중국에서 우리 제품을 수입하려 하는데 우리는 중국 업체와 직접 거래하기 싫으니 당신이 중국 판매를 맡으면 어떠냐”고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중국 회사를 믿기 어려워 한국 회사에 판매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 오퍼상에게 이런 기회가 온 것은 그동안 한국 대기업이 국내외 시장에서 쌓아온 신뢰에 기초한다. 신뢰를 얻는 데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잃는 것은 한순간이며, 지금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 기업, 한국 제품이 후발 추격자들에게 갖고 있는 경쟁력을 스스로 훼손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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