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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손영옥] ‘불쾌한’ 무용담의 기억

일부 남성 문인들의 여성혐오 너무 지나쳐… ‘개저씨 문학’ 되지 않도록 변신 서둘러야

[내일을 열며-손영옥] ‘불쾌한’ 무용담의 기억 기사의 사진
4년 전 일이다. 한 문학출판사 사람들과 몇몇 여기자들이 저녁을 먹었다. 2차 자리에서 출판사 대표가 호형호제하는 문인 A씨를 불러냈다. A씨는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유명한 남성 문인이다. 그는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여성편력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있으니 명백히 불륜이지만, 그야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였다. 한술 더 떠 그 남성 출판사 대표는 자신이 “형수님”이라고 부르는 A씨의 아내 몰래 관계가 유지되도록 얼마나 기여했는지 신이 나서 거들었다.

요즘 문단에서 ‘여혐(여성혐오)’ 논란이 한창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온라인에서 번지는 갑론을박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때의 불쾌했던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A씨의 문학적 자장(磁場)을 관통할 수밖에 없을 가부장적 우월의식이 작가와 출판사라는 문학시장의 시스템을 통해 지지되는 현장이었다.

최근의 여혐 논란을 촉발시킨 핵심엔 한 용감한 젊은 시인의 내부고발이 있다. 인권영화제 기획에도 참여한 김현(36) 시인이다. 그는 계간지 ‘21세기문학’ 가을호 기고를 통해 한국 남성 문인들의 ‘여혐’ 행태에 대해 고발하며 문단의 반성을 촉구했다.

폭로한 사례는 상상 초월이다. B씨는 송년회에서 후배 여자 시인에게 맥주를 따라보라고 명령했다. 맥주가 컵에 꽉 차지 않자 자신의 바지 앞섶에 컵을 가져가 오줌 누는 시늉을 했다고 한다. 술자리에선 여자 시인들에게 ‘XX 같은 X’ ‘남자들한테 몸 팔아서 시 쓰는 X’ 같은 욕설이 오간다. 여자 시인을 성적 대상화해 점수를 매기기도 한다.

김별아 작가는 한국 최초의 여성 소설가로 마땅히 기록되었어야 했던, 탄실 김명순(1896∼1951)의 삶을 복원한 장편 ‘탄실’(해냄)을 지난여름 출간했다. 김명순은 1917년 문예지 ‘청춘’으로 등단했고,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이광수의 극찬을 받았다. 100편에 달하는 시와 20편에 가까운 소설, 에세이, 칼럼, 희곡 등을 고루 남겼으나 한국 문학사에서 그의 이름은 지워졌다. 평양 거부의 딸이었지만 어머니가 기생 출신이라는 점, 일본 유학 중 겪은 불행한 성폭력 사건 등 문학 외적 개인사가 그를 가십거리로 만들었다. 김동인을 비롯한 남성 작가와 비평가들의 인신 공격적 비난과 따돌림 당한 그는 결국 일본으로 떠나고 문학사에서 사라졌다.

최근의 여혐 논란을 지켜보면 한국 문단은 탄실이 활동했던 1920, 30년대와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근저에는 권력관계가 있다. 문학평론가 심진경씨는 “문단은 가부장적인 서열 구조를 가지고 있다. 등단한 지 얼마 안 되는 후배가 선배들의 부당한 행태에 대해 정색하고 항변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탄실의 시대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수치는 당하는 자의 몫인 것이다.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1990년대 이후 이혼, 일탈 등을 소재로 한 페미니즘 문학이 등장하기는 했으나 큰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페미니즘 문학을 하위에 위치 짓고 “나는 작가이지 페미니즘 작가가 아니다”라고 밝히는 여성 작가가 공존하던 시대였다.

최근의 여혐 논란은 좀 달라 보인다. 문학 독자가 점점 떨어져나가는 상황에서 여전히 가장 충실한 독자로 남아 있는 20, 30대 여성들은 압도적 구매력을 바탕으로 예전과는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김현 시인의 용기는 이런 변화의 선상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라는 진단도 있다. ‘개저씨(개+아저씨) 문학’이 될 것인가, 말 것인가. 논란의 와중에 “떨고 있다”는 남성 문인들의 변신이 요구된다.

손영옥 문화팀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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