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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명절증후군’에 투영된 배려 결핍 사회

추석이 고통스러운 세태…불편함 덜어줄 배려심 너무 부족해 ‘실업청년 등 소외된 이들 보듬어야’

추석은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이다. 한가위만 같으라고 했다. 1년간 흘린 농부의 땀방울이 결실을 맺으니 온 가족이 모여 즐거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1970∼80년대 추석은 산업화의 그늘을 어루만지는 진통제였다. 일을 찾아 도시로 떠난 이들이 팍팍한 삶에서 잠시 벗어나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애잔한 기다림 끝에 추석을 맞는 사람이 요즘 얼마나 있겠나 싶다. 이제 국어사전에 올라도 될 법한 조어 ‘명절증후군’이 달라진 추석의 풍경을 말해준다.

1990년대 후반 처음 등장한 표현은 ‘명절 후 증후군’이었다. 주부들이 명절노동에 시달린 뒤 겪는 통증과 스트레스를 일컬었다. 이를 압축한 명절증후군이란 말에는 그 노동을 실제 하기도 전부터 정신적 고통이 시작된다는 의미가 추가됐다. 설레며 기다리던 추석을 고통스러워하며 기피하려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간다. 명절이 공동체의 갈등 요소로 변질되고 있다. ‘명절 이혼’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포털사이트에선 추석과 설 연휴가 끝난 뒤 ‘이혼’을 검색하는 횟수가 급증한다. 법원에 접수되는 이혼소송 건수도 명절 다음 달이면 크게 늘어나며 이는 해마다 반복되는 현상이 됐다. 이혼한 남녀를 조사하니 남성의 44%, 여성의 60%가 “이혼 결심에 명절이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명절증후군이 미치는 범위도 확대되는 추세다. 주로 주부들이 고통을 호소했는데 요즘은 남편, 미취업자, 미혼자, 시어머니까지 그 증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명절증후군은 마음의 병에서 비롯된다. 온 가족이 모였을 때 누군가 불편해한다면 불편함을 덜어주는 가족의 배려가 유일한 처방일 것이다. 이 용어가 등장한 직후부터 수많은 전문가들이 신문과 방송에서 배려의 처방을 조언했지만 우리는 20년 가까이 같은 병을 앓아가며 명절을 보내고 있다. 누군가를 배려하려면 내가 달라져야 한다.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기존의 의식(意識)과 의식(儀式)을 바꾸지 못한 채 너무 오랜 세월을 지냈다.

이것은 한 가족의 명절나기를 넘어서는 문제일 수 있다. 한국사회가 직면한 저출산 위기 역시 출산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턱없이 부족했던 문화와 무관치 않다. 출산이 초래하는 경제적 부담, 경력 단절, 직장생활의 어려움 등을 헤아리지 못했고, 위기가 닥치자 뒤늦게 육아휴직 같은 배려의 방법을 논하고 있다. 양극화 문제는 또 어떤가. 경쟁 일변도의 세상에서 뒤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씀씀이가 정책에 스며들어 있었다면 이처럼 빠르게 잠식해 오진 않았을 것이다. 불운하게 저성장 시대에 태어난 실업 청년부터 100세 시대를 감당해야 하는 노인까지 배려가 필요한 대상은 갈수록 늘고 있다. 그들의 불편함을 덜어줄 준비는 돼 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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