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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이광형] 鑑定과 感情

이 화백과 경찰의 감정적 대립은 불필요… 작가 명성도 지키고 해결 방안도 찾아야

[내일을 열며-이광형] 鑑定과 感情 기사의 사진
“감정(鑑定) 잘못하다가는 감정(感情) 상한다.” 미술계 인사들이 미술품에 대한 진위를 파악하거나 시가를 매길 때 흔히 하는 얘기다. 감정(鑑定)은 하는 쪽이나 맡긴 쪽이나 각각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결론도 없이 서로 감정(感情)만 상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감정은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어렵고 까다로운 게 감정이다.

감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안목감정과 과학감정이다. 안목감정은 특정 작가의 작품을 오랫동안 지켜봐왔던 전문가가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의 진위를 가리는 것이다. 이 경우 눈이 중요한 도구가 되지만 작품의 도록과 유통경로 등 ‘족보’를 근거로 삼는다. 작품을 많이 취급해온 화랑운영자나 작가의 작업변화를 관찰해온 비평가 등이 안목감정에 참여한다. 과학감정은 캔버스와 물감의 제작연도, 작품에 남아있는 작가의 지문이나 흔적, 붓질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고 끊기는 현상, 다른 작품과의 비교, 작품 판매에 따른 계좌추적 등을 체계적으로 조사·분석하는 방법이다. 논란이 되는 작품은 대부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맡겨진다. 국과수의 과학감정에도 전문가들의 안목감정이 동반되는 것은 물론이다.

진위 논란의 중심에 놓였던 박수근의 ‘빨래터’ 천경자의 ‘미인도’에 이어 이우환의 작품도 국과수의 과학감정을 거쳤다. 국과수는 경찰이 압수해 감정을 의뢰한 13점 모두 위작이라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작가는 “내가 척 보면 안다. 13점 모두 내가 그린 게 맞다”고 주장했다. 작품의 진위 감정을 놓고 경찰과 작가가 감정싸움을 하는 모양새다.

경찰이 위조범까지 붙잡았음에도 작가가 진품이라고 거듭 주장하니 경찰로서는 자존심이 상했을 법하다. 미술계에서는 이 화백이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데는 경찰의 일방적인 수사와 위작 발표에 기분이 상한 게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작가가 엄연히 살아있는데 경찰이 물어보지도 않고 위작으로 결론 내린 것에 대한 반발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경찰이 더욱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이상원 서울경찰청장은 최근 “이 화백이 처음 경찰에 출석했을 때 국과수 감정 결과를 설명했더니 아무 얘기도 못 했지만, 이틀 후 다시 와서 모두 진작이라고 했다. 왜 이렇게 하는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은지 의심스럽다. 이 화백도 조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사주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봐야 한다”고 했다.

이 화백 측은 진품을 입증하기 위해 13점이 실린 도록을 찾아내겠다고 한다.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도록만 찾는다면 위작 논란은 더 이상 확대되지 않을 것이다. 경찰이 이 화백을 사주하는 사람까지 수사선상에 올리겠다고 피력한 것은 특정 상업화랑에 대한 선전포고로 들린다. 미술계에서는 다분히 감정적인 대응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생존 작가 가운데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이 화백이 진위 논란에 너무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모습도 보기 안 좋다. 그는 “나도 피해자인데 범죄자 취급하느냐” “국가가 나한테 왜 이러나” “여러분들이 깡패냐”며 경찰 조사와 언론 취재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경찰이 13점 중 4점을 위작으로 하자고 회유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진위 논란은 작가에게 좋을 게 없다. 논란이 계속 확산될수록 작가에 대한 불신감이 커지고 그림값도 떨어지게 될 것은 뻔하다. 경찰도 확실한 증거나 자료를 제시하지 않고 신경전으로 치닫게 된다면 ‘감정수사’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세계적인 작가의 명성도 지키고 진위 논란도 해결할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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