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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손영옥] 당인리발전소를 어찌하오리까

잡화점 차리면 실패… 확실한 하나를 잡자

입력 : 2016-06-29 19:01/수정 : 2016-06-29 19:15
[내일을 열며-손영옥] 당인리발전소를 어찌하오리까 기사의 사진
그게 사랑이든 불륜이든 나와 무슨 상관이람. 유부남 영화감독과 아가씨 배우의 부적절한 관계를 두고 세상이 와글거리는 게 우습다. ‘관음’의 재미야 있지만, 그들의 사생활일 뿐이다. 정작 우리 삶을 바꿀 더 중요한 일이 진행되고 있다.

가칭 ‘당인리 문화창작발전소’(이하 당인리) 얘기다. 우뚝 솟은 굴뚝과 육중한 철골 구조가 거친 산업적 인공미를 뿜어내며 한강변에 신개념 문화 풍경을 연출하는 날이 수년 내 올 수 있어서다. 당인리발전소(서울복합화력발전소)의 발전시설이 2017년 지하화가 마무리되면 4호기에 이어 현재 가동 중인 5호기도 수명을 다한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당인리’ 조성을 위한 세미나가 열렸다. 당인리발전소가 문화공간으로 바뀐다는 건 뉴스는 아니다. 2004년부터 공론화가 됐으니 10년 넘게 읊어온 ‘꽃노래’다. 문제는 그 사이 문화지형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활용과 보존의 가치 충돌에서 보존 쪽에 무게가 실리는 문화정책의 변화 추세도 반영이 됐다. 두 개의 발전기 중 4호기는 외관은 물론 터빈과 보일러가 신체 장기처럼 얽혀 있는 내부 구조도 최대한 손대지 않고 보존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당인리발전소는 1930년에 생겨난 우리나라 1호 화력발전소다. 1기를 내부까지 살리는 안은 그래서 박수칠 만하다.

문제는 나머지 5호기를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다. 세미나에선 정부가 너무 욕심이 많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술가를 위한 랩, 전시·공연장, 시민을 위한 예술 놀이터, 아카이브, 아트 마켓, 소규모 예술집단의 거점…. 거기다 산업적으로도 연계시키겠다고 한다.

‘줄줄이 사탕’처럼 용도를 이어붙인 새 용역안이 나오기까지 정부 고민이 이해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당인리는 처음 예술가 창작공간으로 구상됐다. 전업 작가로 자리잡기까지 생계 고민을 덜고 창작활동을 하도록 지원하는 공간이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그 사이 그런 역할을 하는 레지던시는 우후죽순 생겨났다.

문화민주주의 개념까지 대두하며 시민의 문화 향유권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과제도 생겨났다. 예술가 전용공간을 넘어 시민 문화공간으로 개념을 확장시킨 것은 그런 이유다. 그러나 ‘생산과 향유의 조화’라는 개념은 얼마나 추상적이며 태도는 또 얼마나 어정쩡한가.

한 문화계 인사는 “이것저것 욕심내지 말고 확실한 하나를 잡아야 한다. 잡화점을 차리면 결국 실패한다”고 했다.

누구를 위한 공간으로 쓸 건지 콘셉트를 분명히 할 것을 제안한다. 예술가냐, 일반 시민이냐의 두 마리 토끼 중 하나를 잡아야 한다. 타깃 층이 애매모호하면 성공하기 쉽지 않다. 과감한 ‘뺄셈의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기존에 없던 것,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추면 어떨까. 영리가 목적인 민간에서 관심 갖지 않는 마이너 예술가, 마이너 장르에 기회를 줄 수 있다. 대중에 포커스를 맞춘 복합 문화공간도 우리나라에는 없다.

장례식장을 리모델링해 만든 파리 외곽의 르 성카트르(Le Centquatre)는 가장 큰 홀을 비워두고 대중에게 개방한다. 파리 시민들은 배드민턴을 즐기거나 저글링과 같은 곡예, 발성 연습을 하는 등 다양한 목적으로 이용한다.

우리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 감탄하듯, 한강 유람선을 탄 중국인 관광객(유커)이 당인리의 야경에 감탄하는 날이 올 것이다. 더 부러움을 사야 하는 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어야 한다. 정부는 ‘버리는 용기’를 내야 한다.

손영옥 문화팀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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