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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금의 정석] NPO, 이제는 윤리다… ‘모금 시장은 전쟁 중’ 캠페인도 자극적

[모금의 정석] NPO, 이제는 윤리다… ‘모금 시장은 전쟁 중’ 캠페인도 자극적 기사의 사진
한 노르웨이 비영리조직(NPO)의 캠페인 방송 캡쳐로 한 백인 남성이 연약한 흑인 아동을 안고 있다. 2013년 ‘러스티 라디에이터 어워드(Rusty Radiator Award)’를 수상한 사진이다. 특정 인종은 나약하며 도움이 필요한 존재란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로 선정됐다. 러스티 라디에이터 어워드는 대중에게 편견을 심어줄 수 있는 부적절한 모금을 한 NPO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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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은 자선단체 등 비영리조직(NPO)의 모금활동이 가장 활발해지는 시기다. 한해를 마무리하며 고통 받는 이웃을 돌아보고 나눔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서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 일대. 길거리 모금가와 모금부스는 유동 인구가 많은 지하철역 출구나 횡단보도 근처에 집중돼 있었다. 밀집 정도가 심한 구간을 지날 때는 50여m마다 모금 제안을 받기도 했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NPO 간 ‘모금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것이다. NPO의 모금 환경이 경쟁적일수록 자극적인 홍보문구를 사용하거나 수혜자의 아픔을 상품화하는 잘못을 범하기도 한다.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는 지난 4일 ‘NPO 모금활동의 윤리적 풍토와 대처에 관한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온라인 설문인 양적조사에는 46개 기관이, 대면 설문인 질적조사에는 경력 3년 이상 모금가 12명이 참여했다. 연구에서 국내 대·중·소 규모의 모금가들은 “현재 국내 모금시장은 그야말로 전쟁이며, 모금 목표 달성에 대한 압박과 기부자의 과도한 요구 등으로 윤리적 모금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는 연말, 국내 모금운동의 현실과 대안을 짚어봤다.



자극적 문구·사진 어쩔 수 없어

“모금할 때 수혜아동 얼굴을 공개하면 100만원이 들어오고, 멀리서 찍은 뒷모습이나 손을 보이면 그보다는 덜 들어온다. 인권침해 같아 꽃이나 자연 등 사업 내용과 다른 이미지를 쓰면 모금이 거의 되지 않는다.”

국내 저소득층 가정 모자(母子)지원 단체에서 활동하는 A씨가 전한 국내 모금 현실이다. A씨는 후원아동 얼굴이 노출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모금액 차이는 크다고 했다. A씨는 “처음엔 아이를 근접 촬영한 사진으로 모금을 했는데 ‘사회운동을 하면서 이래선 안 된다’는 양심의 가책이 들었다”며 “모금가가 아이 얼굴 팔아 돈을 버는 사람은 아니지 않는가.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캠페인에서 아동의 사진을 다 뺐다”고 했다.

A씨처럼 윤리적 딜레마를 겪다 후원아동의 사진을 모두 뺀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후원아동의 어려운 상황을 십분 이해하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이들의 아픔을 드러내는 경우가 더 많다. 국내외 단체의 모금 캠페인을 보면 아직도 거동이 어려울 정도로 비쩍 마른 흑인 아동이 허공을 응시하는 모습이 여럿 등장한다. 최근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NPO의 상투적인 모금 캠페인을 비꼬는 사진이 인기를 얻기도 했다.

사진에는 아프리카 소년이 자신을 보는 백인 여성에게 “그러니까 내가 카메라 앞에서 울면, 새 학교를 지어준다는 거죠?”란 문구가 적혀 있다. 이런 사진과 영상은 ‘빈곤 포르노’라 불리며 여론의 빈축을 샀다. NPO들이 모금을 위해 아프리카 흑인인 후원아동의 사진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해외에 본부를 둔 NPO의 경우 아동보호를 위해 자체적으로 내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실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는 NPO 7개 단체들과 논의해 작성한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지난해 공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NPO 모금가들은 ‘OOO원이면 이 아이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습니다’와 같은 자극적 문구나 이미지를 포기하기 어렵다. 기부자와 언론매체는 후원아동의 참상을 눈으로 보길 원한다. 대규모 NPO 소속 모금가 B씨는 “당장 죽어가는 아이들은 일부분인데…. 가난하지만 꿈을 갖고 사는 아이들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그러면 소위 ‘그림’이 안 된다. 모금방송에서도 강한 그림을 원한다”고 했다. 모금 성과 때문에 윤리를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대규모 NPO의 모금가 C씨는 “최근 NPO들이 크게 성장하고 서로 같은 분야에서 경쟁하다 보니 모금이 전쟁이 됐다. 결국 NPO의 성과라는 게 모금 아니겠느냐”며 “모금액이 줄면 부서가 통합·축소되고 인력 유출 등 조직이 큰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모금 성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어긋나는 요구 받아도 거절 힘들어

과열된 모금 경쟁은 NPO가 조직의 모금 윤리를 실천하기 어렵게 한다. 소규모 NPO의 모금가 D씨는 몇 년 전 노동 착취로 문제가 됐던 한 기업의 후원 제안을 받았다. 해당 기업이 제안한 건강 프로그램은 이주민 복지를 실천하는 D단체에 꼭 필요한 지원이었다. 그러나 내부에서 노동 착취로 고통 받는 이주민에게 해당 기업의 후원을 제공하는 게 옳으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D씨는 “이 일 이후 모금 윤리를 제정했는데 향후 모금에 ‘발목 잡히지 않을 정도’로 모호하게 정했다”며 “‘너무 엄격하게 정하면 대다수 기업의 후원을 받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부자가 조직 미션과 다른 요구를 하며 후원을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 D씨는 이주민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면 후원하겠다는 한 교회의 제안을 거절한 경험이 있다. D씨도 기독교인이고 단체도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세워졌지만 개종을 조건으로 기부금을 받을 수는 없었다. 그는 “단체의 정체성을 인권단체가 아닌 선교단체로 바꾸면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교회의 요청을 꽤 받았다”며 “결국 조직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선교 목적을 띤 후원금은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도박·주류 등 국민 정서에 반하는 기부자 수용 여부도 모금가에게 윤리적 딜레마를 제공한다. 대규모 NPO의 모금가 F씨는 “모금 윤리는 정말 중요하나 한편으로는 일종의 족쇄 역할을 하기도 한다”며 “국민 정서에 반하는 기업이 고액 기부를 제안하면 여러 조건을 제시하는 식으로 먼저 거래를 제안한다. 우리 입으로 ‘주류 사업은 절대 안돼’라고 강하게 말하기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상화된 나눔 문화 정착돼야

전문가들은 NPO 모금가들이 모금 윤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일상화된 나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난해 여름 전 세계에서 유행한 기부 캠페인 ‘아이스 버킷 챌린지’처럼 쉽고 재미있게 기부할 수 있는 문화가 조성돼야 NPO들이 ‘빈곤 포르노’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사이버대 이민영(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모금을 일종의 마케팅으로 인정하는 순간부터 NPO들은 모금 경쟁에서 윤리를 지키기 어려워진다”며 “영국 BBC의 자선 프로그램 ‘칠드런 앤드 니드’나 ‘레드 노즈 데이’처럼 유쾌하고 건강한 기부행사가 대중에게 널리 퍼질 때 일상 기부가 가능해지고 모금시장의 파이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윤민화 교수는 “현재 국내 모금가들은 소속 단체의 기준이 아닌 재량에 따라 모금 딜레마를 해결하는 편”이라며 “윤리적 모금 풍토를 정착하기 위해서는 모금가들에게 국내 상황에 맞는 윤리 규범을 가르칠 수 있는 장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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