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전체기사

[선물] 하나님 종의 아내, 예수 태어난 땅에 서다… 사모 27명이 받은 특별한 선물 ‘이스라엘 성지순례’

[선물] 하나님 종의 아내, 예수 태어난 땅에 서다… 사모 27명이 받은 특별한 선물 ‘이스라엘 성지순례’ 기사의 사진
사모들이 고대 도시가 보존돼 있는 이스라엘 벳샨국립공원 반형극장 무대에서 찬송가 79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부르고 있다. 미국 조지아에서 온 성지 순례객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다비드투어 제공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예수님은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목사는 목회를 통해 그 선물을 나눈다. 사모는 그의 돕는 배필이다. 그 사모에게 평생 가장 큰 선물은 ‘하나님의 부르심’(요 21:17)일 것이다. 전국 각지의 사모 스물일곱 명이 ‘이스라엘 성지순례’라는 선물을 받았다. 이들은 성지 순례가 “올해 하나님에게 받은 가장 큰 선물”이라고 했다. 사모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헌신과 사랑’이었다. 하나님의 종이 된 남편에게 순종했고, 하나님의 몸이 된 교회에 헌신했고, 하나님의 양된 성도들을 사랑했다. 목회하겠다는 남편을 울며불며 말린 이도 있었고, 남편을 목사로 만들었다고 천국 가서 하나님께 자랑하겠다는 이도 있었다. 사모들이 있기에 지금 우리 교회가 있다. 국민일보와 다비드투어(대표 이윤)가 공동 기획한 여행을 최근 기자가 동행했다.

“은퇴 전 하나님께 받은 가장 큰 선물”

사모들이 주일 늦은 밤 인천공항에 모였다. 일행 중 최고 연장자인 박향순(70·부천 만평교회) 사모는 아이처럼 들뜬 얼굴이었다. “목사님 저녁 밥 차려주고 얼른 챙겨서 왔어.” 박 사모는 한참 연하인 기자가 편한지 말을 낮췄다. 대부분 초면이지만 사모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일행은 친숙감을 느끼는 듯했다.

박 사모는 비행기를 탑승하는 시간까지 내내 혼잣말로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처음 가는 해외여행지가 이스라엘인 게 얼마나 고마워. 예수님 태어나신 곳에…. 목사님과 난 내년엔 은퇴하려고 해. 이번 순례가 은퇴하기 전에 하나님께 받은 가장 큰 선물이야.”

첫날 사모들은 1947년 구약사본이 처음 발견된 쿰란 동굴에 갔다. 바로 앞 사해(Dead Sea)에 몸을 담그기도 했다. 사모들은 몸에 점토를 바른 채 해변에 일렬로 서서 일명 ‘미스코리아’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었다. 허리에 손을 올리거나, 한 손을 들어 흔드는 것이다.

신나게 찍는 중에도 “성도들이 보게 되면 민망한데” “목사님이 이건 하지 말라고 할 텐데”라고 걱정 아닌 걱정을 했다. 버스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이어지는 와디켈트 계곡에 가는 길이었다. 현지 안내를 맡은 조형호 재이스라엘 한국문화원 목사는 “창밖을 한번 보십시오. 황량하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이 광야를 40년 동안 헤맸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는 하나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이유입니다”라고 했다.

목회도 어쩌면 광야의 연속이다. 박 사모의 얘기다. “서른일곱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어. 우리 목사님이지. (웃음) 버스 토큰(Token) 하나가 없어 서울에서 부천까지 걸어 다닌 적도 있어. 지난해까지 성도가 스무 명쯤 됐는데 근처에 종말론 내세우는 큰 교회가 생겼어. 아이고, 거기로 다 빠져나가고 지금은 딱 다섯 명 남았네.” 그는 교회 자모실에서 잠을 자고 기도한다. 왜 그러냐고 묻자 “그게 편해”라고 했다.

강원도 산골 사택 섬돌 위 ‘냉이 한줌’ 아직도 생생

사모들은 순례 중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오순흥(49·원주 화평교회) 사모는 처음 남편에게 청혼을 받았을 때 거절했다. “사모할 자신이 없었어요. 근데 목사님(남편)이 ‘제 옆에만 있어주면 된다’고 해서 마음을 돌렸어요. 하지만 사모가 그런 자리가 아니더라고요.” 91년 강원도 정선에서 1시간 더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시골 임지로 갔다.

산골이기 때문에 연세가 많은 어르신을 차로 모셔야 할 일이 많았다. 차 살 돈을 마련하기위해 도시 교회의 여름 수련회 신청을 받았다. “제가 밥을 해주고 청소를 했어요. 어느 여름 쉴 새 없이 일했더니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더라고요. 한 성도의 집으로 도망을 갔어요. 목사님은 제가 혹시 정말 물에 빠져죽은 건 아닌가 하고 어두워질 때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찾으러 다니고….”

사모는 쉴 새 없이 봉사해야 하는 자리였다. 순례 중 점심 도시락을 먹고 정리를 할 때다. 식사를 먼저 마친 사람이 일어나 도시락을 정리하자 한 사모가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이상하네”라며 불편해했다. 늘 성도들보다 먼저 봉사하는 습관이 배어 있기 때문이었다.

오 사모의 기억 한 토막. “강원도 교회 사택에 이사 갔을 때예요. 봄이었는데, 누군가 섬돌 위에 냉이 한줌을 올려놓고 갔더라고요. 어느 성도가 가져다 놓은 것이었겠죠? 얼마나 좋던지….” 어제 일인 양 그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아름다운 기억도 많아요. 하나님이 목회자에게 주시는 은혜가 말할 수 없이 커요.”

김화자(69·성남 영광교회) 사모는 평생 시각장애인인 목회자 남편과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목회를 했고, 2년 전 남편이 소천했다. 김 사모는 “임종 직전 남편에게 ‘나 당신 참 사랑했어’라고 말하니 남편이 손을 펴면서 편히 눈을 감더라”며 눈물을 보였다. 지금도 그는 시각장애인 성도 10여명과 말씀을 나누며 교회를 지키고 있다.

“내가 암에 걸려 다행”이라 기도

목회자의 딸인 조혜경(55·여수 여천은현교회) 사모는 신앙이 깊지 않던 남편을 결혼 후 목회자로 만들었다. “남편을 위해 기도를 많이 했어요. 저는 나중에 천국 가서 하나님이 뭐했냐고 물으시면 할 말 있어요. ‘하나님, 저는 남편을 목회자로 만들었어요’라고.”

박호경(60·대구 갈보리은혜교회) 사모는 순례지 중 갈릴리의 베드로수위권 교회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하나님이 목회자와 사모에게 명한 것이 ‘내 양을 먹이라’는 것이잖아요. 제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데 성지를 다닐수록 드는 생각은 우리의 영원한 성지는 우리 마음과 삶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남의 ‘땅끝마을’에서 온 강미애(51·해남 함께하는교회) 사모는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 말씀을 전한 갈릴리 호숫가, 십자가에 매달린 골고다 언덕을 묵묵히 걸었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찬송 부르고 기도할 수 있어서 참 감사했어요.” 강 사모는 99년부터 해남에서 목회를 해왔다.

“남편이랑 차를 타고 가다가 바닷가에 아담한 집과 터가 마음에 들어 목회를 시작했어요. 남편은 어디 가다가 마을에 교회 십자가가 안 보이면 ‘여기 교회가 들어오면 좋겠네’ 그러면서 다른 목회자에게 소개해주곤 했어요.” 함께하는교회는 성도 수가 많지 않은 시골 교회다. 강 사모는 학습지 교사로 생활비를 벌어 오다 2013년에 그만뒀다.

“사실 제가 그때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어요. 재발률이 높기 때문에 5년까진 안심할 수 없어요. 이번 여행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을까봐 걱정을 많이 했어요.” 다행히 그는 김화연 인솔자의 자상한 안내에 따라 일주일간의 순례를 무사히 마쳤다.

“처음 암 진단 받고선 왜 나냐고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일주일쯤 지나니 기도가 바뀌더라고요. 만약 저희 남편이 걸리면 교회는 어떡합니까. 성도들이 걸리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남편이나 성도가 아니라 제가 병에 걸리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이것이 우리가 만나는 사모의 기도이다. 이 사모들에게 하나님이 준비한 큰 선물이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갈릴리(이스라엘)=글·사진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문서선교 후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