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전체기사

[시사풍향계-황태순] 선거구 재획정 꼼수 안 통한다

“비례대표 10명 정도만 줄이면 된다는 등의 발언 우려스러워… 신뢰회복도 중요”

[시사풍향계-황태순] 선거구 재획정 꼼수 안 통한다 기사의 사진
의아하다. 너무 조용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30일 헌법재판소는 3대 1 이내의 인구편차를 허용하고 있는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그리고 내년 말까지 2대 1의 기준에 맞춰 선거구를 새롭게 획정하라고 주문했다. 그렇게 되면 246개 선거구 가운데 62곳이 조정돼야 한다. 그러니 여의도는 패닉 상태에 빠질 수밖에.

그런데 며칠도 지나지 않아 바로 평정을 찾았다. 그러니 더욱 의아하다. 정치권의 내공이 깊어서 인가, 아니면 무슨 묘수를 찾아내서 그런 것인가. 하기야 내년 말까지만 선거구 획정을 하면 되니 그렇게 급할 일도 아니긴 하지만, 현역 국회의원들 입장에서는 자칫하면 자기 지역구가 날아갈지도 모르는데 너무 태평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헌법재판소에서 국회의원 선거구의 인구편차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 이번으로 세 번째다. 다시 말해 정치권은 이미 두 번에 걸쳐 나름대로 시련을 겪었고 또 이를 그럭저럭 넘어왔다. 그러니 이번의 경우도 잘만 하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을 것이다. 지난 두 차례의 헌법재판소 결정과 그에 대한 정치권 반응을 보면 확실해진다.

1995년 헌법재판소는 인구편차를 4대 1로 결정했다. 그러자 1996년 15대 총선에서 정치권은 전국구(현재 비례대표) 의원 수를 14대 국회의 62석에서 15대에는 46석으로 줄였다. 지역구가 16곳 늘어난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현역 의원들의 지역구 통폐합을 최소화했다. 그런 국회가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IMF 환란 위기의 고통을 분담한다는 차원에서 국회의원 정수를 당초 299명에서 273명(지역구 227+비례대표 46)으로 지역구에서만 26석을 줄인다.

2001년 헌법재판소는 두 번째로 인구편차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 지역구 간 인구편차를 3대 1 이내로 맞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17개 총선 전해인 2003년 말까지 선거구 획정을 다시 하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결과는? 우선 2004년 새해 벽두까지 어떤 결정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총선에 임박해서 여야 합의로 국회의원 정원을 299명(지역구 243+비례대표 56)으로 환원시킨다. 헌법재판소의 주문을 아주 가볍게 비켜나갔다.

헌재의 세 번째 주문에 대한 반응도 지난 두 차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아직 당론을 정한 것은 아니지만 의원들의 사견임을 전제로 나오는 말이 그렇다. 비례대표를 10석 정도만 줄이면 2대 1 기준에 그럭저럭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 19대 국회에서 비례대표 의원들이 앞다투어 사고를 쳐대니 명분도 있어 보인다. 물론 정의당 등 소수 정당은 오히려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평등선거’와 ‘표의 등가성’이란 대원칙에 맞추자면 유권자가 행사하는 한 표의 가치가 동일한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 연방 하원의원의 경우 435개 선거구 간 편차가 1.1대 1로 거의 없다. 하지만 선거구를 획정하는 데 있어서 인구편차와 함께 지리적 상황, 행정구역, 역사적·전통적 일체감 등 여러 요인도 함께 감안해야 한다. 사정이 이러니 슈퍼컴퓨터로 선거구를 조정해도 될까 말까한 것이 현실이다.

정치권이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순기능으로 작용하고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다면 국회의원 정수를 늘린다고 해도 크게 탓할 일은 아니다. 우리 헌법은 200명 이상으로만 국회의원 수를 정하고 있기에 그렇다. 사실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의원 수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결국 문제는 정치권이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느냐다.

지금부터라도 국회가 제대로 역할을 해나간다면 국민들도 수에 집착하기보다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데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2014년 국회 예산은 5041억원으로 서울 강남구청의 5772억원보다 적다. 열심히만 해라. 그러면 국민들은 일할 수 있는 여건은 만들어준다.

황태순(정치평론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X 페이스북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