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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피플] 가나안농군학교 설립자 故 김용기 장로 손자 김장생 교수

후진국 빈곤 해결책은 ‘가나안’ 정신이죠

[미션&피플] 가나안농군학교 설립자 故 김용기 장로 손자 김장생 교수 기사의 사진
지난달 29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장생 연세대 교수. 가나안농군학교 설립자의 손자인 그는 세계 최빈국을 돕는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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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가 이달 초 카카오톡으로 보내온 사진에서는 아프리카 대륙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괭이를 든 그는 흑인 다섯 명과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남자가 머물고 있는 곳은 아프리카의 우간다. 최근 에볼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대륙이었다. 그의 안전이 걱정돼 안부를 물었다.

"(우간다가 있는) 동아프리카에선 에볼라가 큰 문제가 되고 있지 않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질 장티푸스 말라리아 같은 '일상적인' 질병들입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2달러가 없어 말라리아약을 사 먹지 못합니다. 이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질병은 빈곤입니다."

아프리카 방문만 서른여섯 번…숨은 아프리카 전문가

이 남자의 이름은 김장생(40) 연세대 인문예술대학 교수다. 그는 2010년 연세대 원주캠퍼스 교수로 부임해 국제구호 현황과 빈곤 실태 등을 가르치고 있다. 김 교수를 23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지난달 30일 우간다로 출국한 그는 23일 오후 한국에 돌아왔다. 김 교수가 아프리카를 방문한 건 이번이 서른여섯 번째.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 그는 그간 이들 후진국을 방문해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으로부터 아프리카 연구용역을 수주해 경제부흥 방안을 연구했고, 현지 주민들을 상대로 닭이나 돼지 사육법도 가르쳤다.

“이번엔 우간다 캄피리기샤 마을을 방문했어요. 이곳에 지난달 코이카, 한경대와 함께 지도자센터를 건립했거든요. 현지 지역 지도자들에게 농업기술과 공동체 조직방안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지도자센터의 교육은 올 연말부터 진행한다. 지도자센터는 현지 지역 지도자들의 교육을 위해 만든 ‘학교’이지만 우간다 국회의원과 장관들이 가장 먼저 교육을 받는다.

“요웨이 무세비니 우간다 대통령을 그동안 여러 번 만났어요. 대통령은 센터가 설립되면 우간다 지도급 인사들부터 교육해 달라고 하더군요. 국회의원들, 장관들이 가장 먼저 지도자센터를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경제부흥에 성공한 한국인들이 지은 곳이니까요.”

그의 아프리카 활동과 지도자센터의 ‘성격’을 알려면 김 교수의 성장 배경부터 알아야 한다. 김 교수는 새마을운동의 모태인 가나안농군학교를 세운 고(故) 김용기 장로의 손자다. 가나안농군학교는 절약정신과 공동체 정신을 가르치는 학교로 1962년 설립돼 그간 70만명을 웃도는 교육생을 배출했다. 김 교수는 강원도 원주 가나안농군학교 관사에서 나고 자랐다. 그에게 가나안농군학교 특유의 엄격한 교풍(校風)은 곧 가풍(家風)이었다.



“가나안농군학교 정신을 아프리카에”

현재 그는 가나안농군학교의 철학과 커리큘럼을 후진국에 전파하는 가나안세계지도자교육원에서 부원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8년 전만 해도 그는 종교철학을 공부하는 연구자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1993년 감리교신학대 종교철학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종교철학 박사학위 과정을 밟았다. 6년간의 유학생활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온 건 2006년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 아버지(김범일 원주 가나안농군학교 교장)와 함께 처음으로 우간다를 방문했다. 아버지가 통역을 부탁해 동행한 여정에서 그는 우간다 사람들의 궁핍한 삶을 보며 뜻밖의 깨달음을 얻었다. 그가 종교철학을 공부하며 몰두한 과제는 인간의 고통. 그런데 그는 아프리카에서 고통의 시작이 빈곤에 있다는 걸 절감했다.

이듬해 그는 가나안세계지도자교육원 기획실장에 부임했고 2012년 부원장 자리에 올랐다. 가나안세계지도자교육원은 가난한 나라 청년들을 초청해 1∼3개월간 가나안농군학교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토록 하는 곳이다. 가나안농군학교 입소자들이 그러하듯 이들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구보를 하고 근면과 검약정신을 가르치는 수업을 듣는다. 교육과정을 수료한 교육생은 ‘개척자’로 임명돼 고국에 돌아간다. 2007년 설립된 이곳에서 그간 배출한 ‘개척자’는 46개국 500여명이다.

사실 김 교수를 처음 인터뷰한 건 지난달 29일이었다. 당시 그는 "국제사회가 그간 후진국에 지원한 돈이 4조 달러가 넘는데 어떠한 가시적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거듭 말했다.

"그렇게 많은 돈을 지원했는데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후진국들은 여전히 가난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그들의 주체적 실천, 지역사회의 변화 등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들 나라는 해외 선진국의 원조에만 의지하는 '원조병'에 걸리게 됐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후진국의 빈곤탈출 해법은 근면, 검약, 희생을 강조하는 가나안농군학교의 정신에 있었다. 실제로 '개척자'를 파송한 우간다나 케냐의 일부 마을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일고 있다. 매일 새벽이면 '개척자'를 따라 마을 주민들이 단체 구보를 한다. 양계나 양돈을 통해 소득을 증대시킨 마을도 20곳이 넘는다. 김 교수는 "앞으로 이런 마을을 200곳까지 늘리고 싶다"고 말했다. 과연 그의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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