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 시사풍향계

[시사풍향계-정윤수] 월드컵 차분하게 즐기자

“삶과 직결돼 있는 축구… 이번 브라질월드컵 때는 사려 깊은 시선 필요하다”

[시사풍향계-정윤수] 월드컵 차분하게 즐기자 기사의 사진
우리는 왜 축구에 몰입하는가. 프랑스 축구천재 지네딘 지단은 말한다. “경기가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할 때가 있다. 공과 일체가 되어 자유로운 최고의 상태 말이다.” 스포츠에 몰입하는 정념, 특히 축구공에 응축되는 열정의 무늬란 기본적으로 이런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 말에 공감한다면 세상의 공전과 당신의 자전이 불일치하여 괴롭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속한 H조의 경기를 이런 시선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D조의 강타자 우루과이와 잉글랜드가 맞붙었을 때, 루이스 수아레스와 다니엘 스터리지의 몸놀림에서 충분히 그 경지를 느낄 수 있다. 두 선수 모두 잉글랜드 명문 클럽 리버풀에 속해 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양보 없는 혈투의 선두에 서 있다. 이들은 우격다짐이나 거친 태클과는 거리가 멀다. 31골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오른 우루과이의 수아레스는 거한들이 철벽을 친 견고한 성채를 대각선으로 누빈다. 우루과이를 대표하는 소설가 갈레아노는 “우리 아기들은 ‘고오오오오오오올’이라고 외치며 태어난다”고 말했는데, 그것이 과장이 아님을 수아레스를 통해 느낄 수 있다. 스터리지 역시 같은 수준의 스포츠카로 질주한다. B조 스페인의 이니에스타, F조 아르헨티나의 메시, G조 포르투갈의 호날두 등 가히 철협쌍웅이요, 와호장룡의 세계다. 이들이 펼쳐내는 ‘공과 일체가 된 자유’를 확인하자. 그 순간, 우리는 세상의 공전과 내 삶의 자전을 일치시키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힐 것이다.

축구는 감독의 세계다. 각 조의 감독들이 펼쳐내는 현현기경의 전술과 터치라인에 바짝 다가선 갈증 또한 우리 삶의 어떤 절실함을 느끼게 해준다. 농구 야구 배구 등은 감독이 선수와 바짝 붙어서 수시로 작전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축구장은 너무나 넓고 감독의 외마디 외침은 거대한 함성에 휘말려 들어간다. 그럼에도 그들은 온몸으로 외친다. 그 간절함을 통하여 우리는 삶의 무거움을 진지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영국의 소설가 닉 혼비는 축구팬의 열정을 이렇게 말한다. “축구를 보는 것은 결코 수동적인 활동이 아니며, 실제로 뛰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느끼는 기쁨은 남의 행운을 축하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운을 자축하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이 이와 같은 마음이다. 사실 이 순간, 우리는 과거처럼 월드컵을 맞이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월드컵이기 때문이다. 차분한 마음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선수들을 격려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모두의 마음이 무겁고 또 모두의 마음이 승리를 원한다. 이는 서로 상극되는 마음이 아니다. 선수들의 움직임과 우리의 성원이 어느 순간 일체감을 갖게 될 것이다. 다만 그것이 거대한 퍼포먼스로 반드시 펼쳐져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무소불위의 FIFA 권력과 대기업과 방송의 상업주의에 의지하여 펼쳐지는 거대하고 화려한 응원 퍼포먼스는 ‘공과 일체가 되어 단 5분이라도 자유로운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 적어도 이번 월드컵만큼은 차분하게 성원해야 한다.

세계 곳곳이 비슷한 상황이다. 격렬한 민주화 열기를 겪은 알제리, 내전에 시달렸던 코트디부아르, 극심한 인종차별을 극복하려는 이탈리아 등이 이번 월드컵을 통해 저마다의 희망을 쏟고 있다. 특히 개최국 브라질이 그러하다. 낮에는 축구하고 밤에는 삼바 춤이나 출 것 같은 브라질이지만, 오랜 식민 체험과 독재 시절을 거쳐 민주화의 여정에 들어선 나라다. 그 과정에서 펠레 같은 위대한 스타가 브라질 축구 권력과 맞서 고결한 희생을 치르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에 브라질이 급성장했지만 최근에는 경제위기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고 그 이유로 월드컵을 앞두고 숱한 갈등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런 고통들, 이런 상처들을 견뎌내고자 하는 열망들이 축구장에 몰려든다. 이를 외면하고 어디가 이겼고 누가 골을 넣었는지에만 관심을 둔다면, 그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 아닐까. 그러니 내일 개막하는 월드컵은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하고 사려 깊은 시선이 필요하다.

정윤수 문화평론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X 페이스북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