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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정진수] 한예종,이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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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 정기감사 결과 황지우 총장에 대한 중징계 건의가 나오자 황 총장은 즉각 항의성 사퇴를 했다. 이에 학교 측이 집단 반발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이번 감사와 최근 몇몇 단체들의 문제 제기를 이념 공방으로 몰아가는 구도다.

한예종은 참여정부 출범과 더불어 이 학교 교수 출신인 이창동씨가 문화부 장관에 임명되자, 좌파 성향 교수들을 영입하여 정권을 등에 업고 급격하게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급기야 설립 취지에 어긋난 석·박사과정 신설을 위한 입법을 추진하면서 일반 예술계 대학들과 마찰을 일으켰다.

지금 한예종이 부추기고 있는 소위 이념갈등은 그들이 자초한 것이지 애당초 이념적 정체성이 뚜렷하지도 않은 나머지 예술인들이 제기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분명한 '좌파 예술인'들은 있어도 자신을 '우파'라고 자처하는 예술인은 아마도 이문열씨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물론 좌파든 우파든 학교만 잘 운영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 굳이 프랑스를 예로 들지 않아도 역사적으로 오히려 좌파가 예술교육을 더 잘 해왔다. 한예종의 경우도 이념 성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하라는 교육은 열심히 안 하고 딴 짓을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번 문화부 감사에서 대충 드러난 문제들만 보아도 고약하기가 하류 대학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총장의 치사한 개인 비리 따위는 차치하고라도 무자격 교수 채용, 입시 부정, 교원 복무규정 관리 부적정, 기자재 관리 부실, 무리한 유비쿼터스 앤드 아트 테크놀로지(U-AT) 통섭사업과 협동과정 운영, 방만한 예산 집행 등은 학교 운영의 총체적 부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런 마당에 이르면 좌니 우니 하는 이념 타령에 앞서 드러난 문제점의 사실 여부부터 꼼꼼히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팩트는 접어두고 이념 덧 씌우기에 급급한 것은 뭔가 잔뜩 구린 데가 있지 않으냐는 의구심만 키울 뿐이다. 좌파들의 문제는 항상 남탓만 한다는 것이다. 차제에 초심으로 돌아가 한예종의 근본 문제가 무엇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1993년 개원한 한예종은 '사회가 요구하는 창조적 전업 예술가를 육성하기 위한 실기 및 제작 능력을 배양하는 전문교육을 실시할 목적'으로 창설되었고 이 점이 일반 예술계 대학과 차별화된다고 스스로 밝혀 왔다. 백번 맞는 말이다.

나 자신 몸 담고 있는 일반 예술계 대학들은 예술 실기 교육을 원천적으로 감당해 낼 수 없게 되어있다. 가령 발레나 연기 또는 성악을 3학점 일주일에 3시간 가르쳐서 무슨 교육적 성과를 내겠는가. 전임교수들이 자발적으로 과외지도를 해서 그나마 꾸려가고 있다. 그러니 한예종 같은 교육기관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한예종이 그동안 소임을 다 해왔는가. 교수들이 학생들 붙잡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실기 교육에 매진해 왔는가. 그러라고 만든 대학이 과연 그렇게 해 왔는가. 문제의 초점은 바로 여기 있다.

'전업 예술가'를 키운다면서 석·박사는 왜 필요하며 이론 전공 학과는 왜 두어야 하는가. 이론 과목은 필수 기초 과목만을 외부 전문 강사를 모셔다 가르치면 될 일이지 굳이 전임교수를 두어 아까운 교수인력을 왜 낭비하는가.

그보다는 외국처럼 '거주 예술가'(artist in residence)를 두어 학생들에게 창작 역량을 배양시켜야 할 일이다. 나머지 교수들은 오로지 학생들과 한 몸처럼 생활하며 가르쳐야 한다. 그럴 생각이 없다면 학교를 떠나야 한다.

학생들을 볼모로 잡고 일반대학과 똑같이 교수 폼만 잡으려는 교수들이 스스로 떠나면 한예종의 문제는 해결된다. 한예종을 살리고 키워야 할 책무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

정진수(성균관대 교수·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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