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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로 글바로] 김동리의 詩


시인 서정주와 소설가 김동리가 어느 날 만나 일배일배부일배(一盃一盃復一盃)를 했단다. 거나해진 김동리가 "나도 시를 좀 지을 줄 알지" 하며 즉석 자작시를 낭송했다. 마지막 대목 '벙어리도 꽃이 피면 우는 것을∼'에 이르자 서정주가 탄성을 질렀다.

"벙어리도 꽃이 피면 운다? 옳거니. 내 이제야말로 자네를 시인으로 인정했네." 그러자 김동리가 얼굴 찡그리며 하는 말. "아이다 이 사람아. '벙어리도 꼬집히면 우는 것을'이다." 서정주가 술상을 내려치며 왈. "됐네 이 사람아."

'벙어리도 꽃이 피면 운다'가 시적인 표현으로서는 그럴듯한가 보다. 하지만 산문에서는 용인되기 어렵다. 논리를 꿰맞추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전후 문맥으로 보아 도저히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되는 표현이 흔히 보인다.

'현대는 정보화의 시대라는 말을 우리는 신문지상 등에서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

대충 읽으면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신문은 귀로 들을 수가 없다. 행간의 의미를 살펴서 읽으면 되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정확히 표현하는 게 좋다. 다음처럼 표현하면 무리가 없어 보인다.

'현대는 정보화의 시대라는 말을 우리는 매스컴에서 눈이 아프도록 보고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

이번엔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글을 보자.

'두꺼운 어둠 속에 파묻혔다. 그가 자고 있는 나무 아래에서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도둑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여기서 '울긋불긋한 옷'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표현이다. 칠흑 속이니 도둑이 무슨 옷을 입었는지 알기 어렵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표현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이재오 전 의원이 며칠 전 대북 특사를 자청한 발언을 했는데 그 내용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김정일 위원장 앞에서 기분 나쁜 소리도 하면서 그가 환상을 깨고 현실을 직시하도록 깨우침을 주는 인물이 특사로 가야 한다." 김 위원장은 어쨌건 북쪽의 최고 통치자이다. 그런 사람에게 '당신 환상에 빠져 있소'라고 말하는 게 가당한지 모르겠다.

이병갑 교열팀장 bk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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