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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제성호] 좋은 말만 골라 法治 뒤흔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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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가이념인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와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민(民)의 뜻을 존중하는 가운데 그 실현을 추구한다. 이 이념은 '도덕적 절대주의' 대신 상대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하며, 아집과 독선에 따른 자의적 폭력적 지배를 배격한다. 더불어 관용을 미덕으로 삼는다. 다만, 자유민주주의는 인치(人治) 아닌 '법치' 곧 법의 지배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법은 '공동선(善)'을 실현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탈선한 자유·민주·관용의 개념

그런데 최근 자유, 민주, 관용 등의 개념이 오히려 법치와 사회적 평온을 위태롭게 하는 행동을 합리화하는 데 이용되고 있어 걱정스럽다. 자유는 방종과 구별된다. 자율과 책임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남을 폭행하고, 남의 명예를 훼손할 자유는 상상할 수 없다. 요즘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사이버공간에서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가 범람하는데, 반이성적이고 무절제한 상습 언어폭력을 보호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반문명적인 불법 폭력시위도 마찬가지다. 자유가 남용되면 적절하게 억제함이 마땅하다. 독일에서는 자유를 빙자해 헌법질서를 공격할 경우, 기본권을 상실케 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민주는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다. 민주는 민중(Demos)과 지배(Kratia)의 합성어로 '다수의 지배' 라는 의미를 갖는다. 다수결원칙은 민주주의 실현의 기본이다. 물론 다수의 횡포를 막기 위해 소수의견을 보호하는 장치는 필요하다. 그렇다고 소수의 '떼쓰기'로 다수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를 원천봉쇄하는 것은 민주가 아니다. 국회에서 법안 상정 자체를 육탄으로 저지하거나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법안을 제출했다고 국회의원을 폭행하는 것, 국가이익과 국민을 생각지 않고 정파적 이해에 얽매이는 것은 모두 민의를 왜곡하고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반민주적 작태다. 또 법질서와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에게 화염병을 던져 숨지게 한 행위를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는 것도 '민주'라는 말의 부적절한 용례다.

관용은 좋은 것이다. 그렇다고 극악무도한 살인범을 무죄방면할 순 없는 일이다. 관용은 '상식'에 맞아야 한다. 혹자는 국가보안법이 사상의 다원성과 관용의 원리를 부정한다고 말하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우리 헌법과 국보법은 내심의 영역에서 어떤 사상과 양심을 갖는지를 문제삼지 않는다. 단지, 외부로 표출돼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반국가적 '활동'만 법적으로 규제할 뿐이다. 국보법은 최소침해의 원칙과 인권의 부당한 제한금지(제1조 2항), 형의 감면(제10조 단서, 제16조), 공소보류(제20조) 외에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이적지정(利敵之情)의 엄격한 구성요건을 부가함으로써 인권 존중, 관용 및 과잉금지의 원리를 구현하고 있다.

만일 인간 존엄성과 인권을 말살하는 주체사상이나 공산주의 사상을 유포·확산시키는 이적행위까지 방임하라고 한다면, 이는 남북 분단과 이념적 대결 아래 있는 한반도 현실을 무시한 발상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의 적에게는 자유가 제한된다"는 '방어적 민주주의'를 본질로 한다. 국가안보와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현행헌법 제37조 제2항은 방어적 민주주의를 제도화한 것이다. 따라서 국보법이 불관용의 반민주 악법이라는 주장은 무책임한 정치선전에 불과하다.

건전한 민주시민교육 절실하다

그럼에도 자유민주주의의 핵심가치를 표상하는 용어들의 오·남용이 지금 사회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아마도 이는 우리 사회에서 건전한 민주시민교육이나 균형잡힌 인권교육이 절대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에게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을 올바로 가르치는 일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물론 시민단체와 언론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국민 계도에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 '참인권'과 '참민주'가 정착될 수 있다.

제성호(중앙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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