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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김찬규] 조평통 성명은 유효한가

[시사풍향계―김찬규] 조평통 성명은 유효한가 기사의 사진

지난 1월30일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성명을 발표, 남한과의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관련된 모든 합의사항들을 무효화하고 남북 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에 있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관한 조항들을 폐기한다"고 했다. 그에 앞서 1월 17일 남한과의 전면대결 상태에 진입한다면서 앞으로 "조선 서해에는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이 아니라 오직 우리가 설정한 해상군사분계선만이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호언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이 있었다. 요컨대 조평통 성명은 후자가 봉착하게 될 법적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남북간에는 기본합의서 및 부속합의서 이외에 화해와 불가침을 위한 각종 법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 그것을 그대로 둔 채 "전면대결 태세에 진입"하거나 NLL 말살에 나선다면 법적 장치에 대한 위반이라는 규탄을 면치 못할 것이기에 먼저 법적 장애물을 제거해 두려는 것이 그들의 의도라 할 수 있다.

무력도발 법적 장애 제거 노려

그러나 조평통 성명은 법의 무지에서 나온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일방적 선언으로는 법적 의무에서 해방될 수 없다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휴전협정 및 일반국제법 등이 무력사용을 금하는 법적 장치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북한도 당사국인 유엔헌장은 모든 회원국에게 분쟁의 평화적 해결의무와 무력사용 및 무력 위협을 하지 않을 의무를 부과하고, 나아가 '유엔의 목적과 상치되는 그 밖의 여하한 방법으로 하는 행위'도 이를 금지한다고 하고 있다(제2조 3·4). 따라서 북한이 만일 경거망동에 나선다면 북한은 휴전협정, 일반국제법, 그리고 유엔헌장에 대한 위반이라는 규탄을 면치 못할 것이며 이에 따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인민군 총참모부가 "불법무법"이라며 그토록 사갈시하는 서해 NLL이란 무엇인가? 1953년 7월 체결된 휴전협정에는 군사분계선이 육상에만 있을 뿐, 해상에는 없다. 해상충돌 방지를 위해 그해 8월 유엔군측이 일방적으로 서해 5도와 북한 연안 사이에 그은 선이 서해 NLL이다. 서해 NLL은 설치목적이 정당하고 북한 연안과 서해 5도의 대략적인 중간선을 따라 획선된 설치방법도 합리적이었다. 당시 북한측의 이의제기는 없었다. 해·공군력이 괴멸상태에 있었던 북한으로서는 이 선이 설정됨으로써 유엔군측 해·공군력의 북상이 차단될 수 있기에 그랬던 것 아니었나 추정된다.

북한이 정식으로 이의제기를 한 것은 1973년 12월1일이다.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북측 수석대표 김풍섭 소장이 서해 NLL은 휴전협정상 근거가 없으며 유엔군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설정된 데 불과하므로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NLL 설치 목적과 방법 정당

하지만 서해 NLL에 대해서는 설치 목적이 정당했고 설치방법이 합리적이었을 뿐 아니라, 1953년에서 1973년까지 20년 동안 북한이 이에 묵종(默從)해 왔기 때문에 1973년 현재 북한은 이에 '대항 능력(opposability)'을 상실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법적 해석이다. 서해 NLL은 일방적으로 설정된 것이지만 휴전협정 당사국 간의 '뒤에 일어난 관행(subsequent practice)'에 의해 1973년 현재 협정의 일부로 굳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북측이 행한 이의제기는 휴전체제에 대한 이의제기가 될 뿐이고 이후 북한이 행한 도발행위는 휴전체제에 대한 도발행위가 될 뿐이다.

북한은 남북 기본합의서 및 부속합의서를 통해 서해 NLL을 추인했다. 국제관습법상 합의사항을 폐기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중대한 위반'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측에 의한 중대 위반은 없었다. 조평통 성명이 제시한 남한측 위반이란 주장은 어느 하나 위반이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중대한 위반은 더욱 아니다. 따라서 조평통 성명은 법적으로 유효한 것이 아니다.

김찬규 경희대 명예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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