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던 5일 오후 5시 30분 인천 중구 월미공원축구장. 경기 시작 호루라기가 울리자 8대8 전후반 총 60분의 축구 경기가 시작됐다. 양 팀 진영에 공방이 오가던 가운데, 전반 8분 레바논에서 온 끼난 알리파이(14) 선수가 유소년 축구단 인천풋볼파크를 상대로 프리킥 선제골을 넣었다.
단숨에 분위기를 가져온 이 팀은 전방을 압박하면서 수비수로부터 공격권을 따냈다. 빈 곳으로 가로지르는 스루패스를 받은 압부데 압둘파타(13)는 골키퍼를 제치며 가볍게 추가 골을 터뜨렸다. 그러자 인천풋볼파크의 반격이 시작됐다. 선수 교체로 분위기를 전환하고는 곧장 패스로 골을 쉽게 만들었다. 곧이어 헤딩골을 넣으면서 동점을 이끌었다.
전반전을 마친 휴식시간에는 감독의 지시로 가득했다. “처음 두 골을 넣었을 때, 경기가 벌써 끝난 것처럼 플레이했다. 아직 시간 남아있어. 30분이나. 끝까지 최선을 다해. 축구에서 제일 중요한 건 패스야. 실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 감독은 선수들의 실수들을 거침없이 짚으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들은 승리를 다짐하면서 라커룸에 나섰다.
각 팀 선수들은 후반전 종료 휘슬이 울리기까지 열정과 땀을 쏟아부었다. 최종 스코어 3:3. 그렇게 경기는 무승부로 종료됐다. 인천풋볼파크와 함께 훌륭한 경기를 보여준 곳은 바로 ‘조이풀(Joyful) 유소년 축구단’이다. 이 팀은 레바논 베카주에 위치한 조이풀 축구단 소속 시리아 난민 어린이들로 구성된 유소년팀이다.
골때리는 녀석들…언더독의 '반란'
조이풀 축구단이 출범한 배경에는 한국인 선교사가 있다. 국제구호개발 NGO 따뜻한하루 레바논 지부장인 김요한(54) 선교사가 그 주인공이다. 이날 경기장에서 만난 김 선교사는 축구단 출범했을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공 하나를 사주고 함께 축구를 즐겼을 뿐인데 여기까지 왔다고.
축구단의 시작은 2021년 무렵이었다. 김 선교사는 레바논 베카주 바르 엘리야스라는 난민촌에서 교육 선교를 펼치고 있었다. 어느 날, 풋살장 앞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이 그날따라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왜 풋살장 안에서 축구를 하지 않냐고 물었는데, 돈이 없어 이용하질 못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연민을 느낀 그는 아이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은 축구를 같이 하자고 약속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아이들의 실력이 예상 밖으로 뛰어난 것이었다. 아이들의 재능이 감당 안 됐던 김 선교사는 옆 동네 축구 아카데미에 아이들을 데려가 훈련을 요청했다.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 된다고 했던가. 축구를 재미있어하는 모습에 감독까지 수소문했는데, 시리아 축구 선수 출신인 페아드 알리페아가 아이들의 사연을 듣고는 흔쾌히 승낙했다. 김 선교사가 사실상 구단주이자 코치, 팀 주치의 등 일인다역을 맡으면서 자연스레 조이풀 축구단이 결성됐다.
언더독의 반란이 일어났다. 김 선교사는 축구단의 실력을 가늠하고자 전국 규모의 대회에 여러 차례 내보냈는데, 이들이 대회에서 서너 차례 우승을 거머쥔 것이다. 레바논에서 유일한 시리아 난민 출신 유소년팀이 자국팀들을 꺾다 보니, 경기장에선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 선교사는 “레바논 측과 경기하면 말도 안 되는 편파판정을 받을 때가 적지 않다”며 “경기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경기장에서 나간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결성된 지 4년 차가 된 축구단에는 이제 레바논 지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20여명을 훌쩍 넘는다.
한국으로 온 축구 꿈나무들
레바논에서 정상을 찍은 아이들을 위해 김 선교사는 방한을 계획했다. 지난 3일 한국에 들어온 조이풀 축구팀은 오는 20일까지 인천, 제주, 서울, 춘천, 속초의 국내 유소년팀들과 친선경기 및 훈련에 참여한다. 성장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다.
그래서일까. 김 선교사는 이번 방한에 축구단이 처참히 패배를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넘어져야 일어서는 방법을 알 수 있듯 패배의 쓴맛을 알아야 승리의 값짐을 알 수 있다”면서 “이번 방한을 통해 아이들이 축구 실력이 향상하고 아울러 내적인 성장이 일어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꿈의 무대에 오를 수만 있다면 빚을 내서라도 돕고 싶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는 이번 방한으로 3000만원의 빚이 생겼다고 한다.
김 선교사에게 왜 이렇게까지 선교를 펼치냐고 물었다. 눈시울이 잠깐 붉어졌던 그의 입술에선 반문이 돌아왔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시고, 또 자신의 생명을 거저 주신 분이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아이들은 하나같이 유명한 선수들을 언급하며 그와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등 번호 9번을 달고 경기에 임했던 딸렙 알다히르(12)는 “리오넬 메시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며 “이번 방한을 계기로 더 수준 높은 선수로 거듭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2골을 기록한 끼난은 프랑스 축구선수 킬리안 음바페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김 선교사는 “조이풀 축구단에 소속된 아이들이 절망에 빠진 시리아 난민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고 있다”면서 “하지만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팀을 홀로 유지해 나가는데 재정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한국교회와 성도분들께서 아이들을 위해, 시리아 난민들을 위해 기도와 응원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시리아 난민 유소년팀의 후원 관련 문의는 ‘따뜻한하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가능하다.
인천=글·사진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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