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친윤(친윤석열)계 핵심으로 꼽히는 정점식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1일 자진 사퇴했다. 한동훈 대표와 정 의장이 여의도 당사에서 면담한 지 하루 만이다. 한 대표가 후임 정책위의장을 직접 고를 수 있게 되면서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 구도도 친한(친한동훈)계 우위로 역전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정 의장이 물러나면서도 “당대표에게 정책위의장에 대한 임면권이 없다”는 가시를 남겨 갈등의 불씨는 남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 의장은 이날 오후 5시쯤 국회 국민의힘 원내대표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시간부로 정책위의장직에서 사임한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의원총회의 추인을 받아서 선출될 후임 정책위의장이 추경호 원내대표와 함께 국민의힘 의원들을 잘 이끌어서 2년 후 지방선거, 3년 후 대선에서 꼭 승리해 정권 재창출의 기틀을 마련해달라”고 부연했다. 그는 특히 “우리 당의 분열을 막기 위해 제가 사퇴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이날 오전까지도 사실상 ‘침묵 시위’를 벌이면서 거취 표명을 하지 않았었다.
정 의장은 ‘버티기 논란’에 대해서도 적극 해명했다. 그는 “갑자기 마음을 바꾼 게 아니다”라며 “사임에 관한 한 대표의 의견을 들은 게 어제 오후 2시였다”고 말했다. 이어 “한 대표가 ‘변화의 시작’이란 부분을 강조하지 않았느냐”며 “새 정책위의장과 함께 일하고 싶다며 완곡하게 말씀해주셔서 그때부터 고민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당헌상으로는 당대표는 정책위의장에 대한 면직권을 갖고 있지 않다”며 “다른 의원들이 당헌과 배치되는 이런 (사퇴) 주장에 따라 물러나선 안 된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의원총회 산하에 있는 정책위의장은 당대표 임면권을 따르는 ‘당 기구’가 아닌 ‘원내기구’에 소속돼 있다는 설명이다. 친한(친한동훈)계 인사들이 정책위의장 역시 당대표의 임면권 행사 대상이라고 압박한 데 대해 반박한 것이다.
정 의장은 그러면서도 “우리 당원들과 의원들이 원하는 건 결국 당의 화합과 지선·대선의 승리라는 측면을 고려했다”고 언급했다. 앞서 그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저는 발언하지 않겠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었다. 이에 대해 정 의장은 “제 발언 하나하나가 큰 파장이 있어 당내 화합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례적으로 발언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대표는 오후 국회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를 접견한 뒤 “우리 당이 변화하는 모습을 신속히 보여달라는 지난 전당대회의 당심과 민심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정 의장에게 사실상 ‘최후통첩’을 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앞서 친윤계와 친한계는 정 의장의 거취를 두고 헤게모니 싸움을 벌일 조짐까지 보였다. 친윤계는 당헌·당규의 ‘정책위의장 1년 임기’ 규정을 근거로 정 의장 사퇴 요구에 강하게 반발했다. 한 친윤계 인사는 “(다른 사람을 앞세우지 말고) 한 대표가 직접 손에 피를 묻히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에 한 친한계 의원은 “한 대표가 정 의장을 존중해 인선을 늦추면서까지 정치력을 발휘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 대표는 조만간 추 원내대표와 협의를 거쳐 후임 정책위의장을 인선할 전망이다. 정책위의장 후보로는 영남권과 수도권의 3선 의원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구자창 정우진 이강민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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