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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적인 사모펀드 블록딜에 개미 뒤통수만 ‘얼얼’


“내가 산 다음 날 주가가 16% 떨어졌다.” 지난 13일 이차전지 핵심 소재 기업 에코프로머티리얼즈(에코프로머티)를 종가에 산 개인 투자자들은 하루 만에 15.96% 평가 손실을 봐야만 했다. 에코프로머티 주요 투자자인 사모펀드(PEF) BRV캐피탈이 14일 개장 전 블록딜 방식으로 에코프로머티 210만 주(지분율 약 3.0%)를 처분했기 때문이다. BRV캐피탈은 13일 종가에서 10.5% 할인율을 적용해 다음 날 개장 전 보유 물량 일부를 넘겼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사모펀드의 잇따른 블록딜로 개인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잦다. 블록딜은 주요 주주가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의 대규모 물량을 시간 외에서 정해진 가격으로 파는 것을 뜻한다. 사모펀드의 블록딜 지분을 사들인 투자자들은 통상 외국인 투자자다. 이미 할인된 가격에 매수했으므로 개장 직후 대부분 물량을 털어 차익을 남긴다.

지난 17일에는 우리 프라이빗에쿼티(PE) 등이 이차전지 전해액 업체 엔켐 보유주식 일부를 블록딜로 팔았다. 엔켐 주가는 이날만 7.07% 떨어졌다. 지난달에도 한앤컴퍼니가 SK이터닉스 보유 지분을, 스톤브릿지캐피탈이 DS단석 지분을 각각 블록딜로 매각했다. 블록딜 직후 이들 기업 주가는 각각 7.35%, 14.30% 하락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사모펀드의 이 같은 기습적인 블록딜에 대처할 방법이 딱히 없다. 기관들이 블록딜을 할 의사가 있는지, 있다면 언제 할 것인지 등을 알 방법이 없는 것이다. 비슷한 문제가 잇따르자 지난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이 개정돼 ‘블록딜 사전 공시 의무제’가 내달 24일부터 시행된다. 이날부터는 상장사 임원과 지분율 10% 이상 사모펀드 등 주요 주주가 1% 이상의 지분을 블록딜로 거래할 경우 거래 목적과 가격, 수량, 기간을 최소 30일 전에 공시로 알려야 한다.

최근 사모펀드 블록딜이 집중된 것은 공시 의무제를 앞두고 지분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수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사모펀드 입장에서는 블록딜 공시 이후 주가가 내리기 시작하면 수익률을 갉아먹는다. 제도 시행에 앞서 공시 의무 기준 아래로 지분율을 낮추려는 목적도 있다. 지분율을 10% 이하로 내릴 경우 공시 의무 대상에서 벗어나 지금처럼 기습적으로 블록딜을 통한 매매가 가능하다. 사전 공시 의무제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건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에 투자자들 사이에선 사모펀드가 주요주주로 이름을 올리면 ‘오버행(잠재적 대량 매도 물량)’ 이슈가 있다고 보고 애당초 투자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언제든 블록딜 매매가 있을 수 있으니 피해야 한다는 의미다. 고경범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BRV캐피탈의 에코프로머티 블록딜 이후 보고서를 통해 “BRV캐피탈이 잔여 지분을 추가 처분할 유인이 높아 보인다”며 투자에 유의하길 권했다.

이광수 기자 g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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