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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식 스파이전 재개한 푸틴… 시민 가장해 서방 침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인근 솔네흐노고르스크에서 열린 경영 워크숍에서 참가자와 대화하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미국 TV드라마 ‘디 아메리칸스(The Americans)’에는 평범한 중산층으로 가장해 미국 사회 깊숙히 침투했던 옛 소련 스파이 부부와 자녀들이 등장한다. 외교관 신분인 소련 정보요원들과 접촉해 다양한 명령을 받고 미국 곳곳의 정보를 캐내다 발각되는 내용이다. 이런 소련의 스파이 파견 행태는 1989년 소련 붕괴로 사라지게 됐다.

하지만 현재 서방사회에서 그 시절을 방불케 하는 러시아의 ‘평범한 이웃’ 스파이 작전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르헨티나 국적을 가졌던 마리아 로사 마예르 무노스와 루드비그 기시 부부는 동유럽 슬로베니아에 투자이민을 와 중산층으로 살고 있었다. 불안한 아르헨티나 정정을 피해 유럽에 살고싶다는 이유였다. 이들은 스페인의 국제학교로 자녀 둘을 유학보내고 스웨덴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 체코 슬로바키아 등 유럽 곳곳을 여행했다.

하지만 알고보니 이들의 본명은 안나 발레브나 둘체바, 아르템 빅토로비치 둘체프였다. 둘다 러시아 해외정보국(SVR) 소속 정예요원이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소속 유럽국가들을 다니며 다양한 기밀정보를 수집하다 2022년 12월 체포됐다.

이들의 잠입방식은 외교관을 가장하는 ‘공식 활동 스파이’와 달리 평범한 일반인 신분으로 서구사회에 침투해 해당 국가에 반감을 가진 인사나 집단을 포섭하고 정보망을 만들며 다양한 정보 수집 활동을 하는 것이다.

신문은 “러시아의 이같은 스파이 작전은 1940년대 미국의 핵무기 기밀을 빼내려는 활동에서 시작됐다”면서 “소련 국가정보국(KGB) 출신인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과거의 유물을 다시 꺼내든 걸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스파이 부부가 체포된 이후 슬로베니아에선 그리스, 브라질 여권을 가진 남녀가 사업체를 버리고 행방을 감췄다. 자국 첩보망이 붕괴될 듯하자 러시아 SVR이 이들을 불러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WSJ는 당국자 말을 인용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는 북유럽 노르웨이에서 서유럽 네덜란드, 동유럽 체코와 불가리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스파이망을 구축했다”며 “2010년 미국에서 일망타진된 ‘유령 이야기 작전’ 이래 가장 큰 규모의 러시아 스파이망이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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