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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도 장소도 내맘대로”… 네덜란드·독일의 놀라운 워라밸

독일의 노동정책 연구 기관인 '노동시장과 직업 연구소(IAB)' 연구원이 지난 6일 독일의 육아휴직 정책 등 일생활균형 관련 제도를 설명하고 있다. 독일 공동취재단

2021년 기준 네덜란드의 출산율은 1.62명, 독일은 1.58명이다. 한국에선 30년 전인 1990년대 초반에나 볼 수 있던 수치다. 네덜란드와 독일의 공통점은 근로자의 ‘시간 선택권’을 폭넓게 보장하고,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촉진해 성별 격차를 줄여가는 방향으로 법·제도를 설계했다는 점이다. 노동시장 구조가 변화하면서 ‘일·가정 양립’ 문화가 뿌리내린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일자리 재분배 노사정 합의… 시간제 차별 금지 규정
네덜란드는 1982년 노·사·정이 합의한 ‘바세나르 협약’을 계기로 시간제 고용이 빠르게 확산됐다. 당시 협약 내용은 네덜란드의 심각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임금 인상 억제’와 ‘일자리 재분배’였다. 주 40시간 이하의 일자리가 늘어나며 근로시간은 줄고 취업률은 높아졌다. 이후 1996년 시간제 근로자의 임금 차별 등을 금지하는 ‘동등대우법’이 제정됐다. 2000년에는 근로자의 시간 조정 권한을 인정하는 ‘근로시간조정법’도 도입됐다.

2016년 시행된 ‘유연근무제법’은 근로시간조정법의 확장판이다. 근로자가 근로시간뿐 아니라 장소 등 근무환경에 대해서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6개월 이상 일한 근로자는 희망 날짜로부터 최소 2개월 전에 근로시간이나 장소를 변경하고 싶다고 고용주에게 요청할 수 있다. 고용주가 이를 거부할 때는 업무나 재정 등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고용 안정 유지하며 근로시간 줄이도록… 한시적 단축제
독일도 2001년 시간제 근로자에 대한 차별 금지, 근로시간 단축·변경 요청 권한을 인정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2019년에는 근로자가 고용주와 합의한 기간이 끝나면 본래의 근무시간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한시적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도입했다. 근로자가 안정적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로시간을 조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45명 이상 일하는 사업장에서 6개월 이상 근무한 근로자는 육아 등 특별한 사유가 없더라도 1~5년간 근로시간을 줄이겠다고 요청할 수 있다. 최소 3개월 전에 청구해야 하며 2년이 지나면 재신청이 가능하다.


일 가정 양립 가능케한 '시간' 정책… 성별 격차 개선 노력도 지속
시간제 근로 활성화는 ‘유연한 근무’와 ‘짧은 근로시간’을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했다. 네덜란드는 유급 육아휴직을 2022년에야 도입했다. 독일은 육아휴직 급여에 해당하는 ‘부모수당’을 부모 합산 14개월까지만 지급한다. 두 국가의 높은 출산율을 뒷받침한 것은 특정한 모성보호제도가 아니라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시간 보장’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네덜란드와 독일의 여성 고용률은 2022년 기준 각각 78.1%, 73.1%다. 같은 해 한국의 여성고용률은 60%에 그쳤다. 남녀 임금 격차는 네덜란드 14.8%, 독일 13.5%, 한국 31.2%로 한국이 압도적으로 높다.

두 국가 모두 한국보다 출산율이 높고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하지만 노동시장의 성별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일하는 여성의 절반 이상이 시간제 근로자인데, 이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남성의 육아 참여를 늘리는 다양한 사회적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네덜란드의 고용정책을 담당하는 사회고용부(SZW) 관계자는 “여성의 경제활동참여를 촉진하는 것이 노동시장 인력 부족을 해결할 기회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워라밸 정책 목표 중 육아를 빼놓을 수 없다”며 “부모의 노동참여를 권장하고 있고 남성의 육아나 가정돌봄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은 2001년 연방정부와 독일의 경제단체들이 ‘남녀 동등 대우’를 위한 자발적 지원에 합의하기도 했다. 기업이 일·가정 양립을 위한 자율적인 조치를 취하고 여성 고용 기회를 개선하겠다는 내용이다. 정부가 저소득층 여성에게만 지원하던 육아휴직 수당을 2007년 ‘부모수당’으로 개편해 모든 부모에게 확대한 것도 여성의 빠른 노동시장 복귀를 지원하기 위함이었다.

독일의 노동정책 연구기관인 ‘노동시장과 직업 연구소(IAB)’ 관계자는 “동독에 비해 서독은 남성이 돈을 벌고 여성이 육아를 하는 가부장적 문화가 좀 더 남아있다”며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정책을 통해 점점 개선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어 “여성이 육아휴직 이후 빠르게 회사에 돌아올수록 임금 격차는 감소하고 여성의 승진 가능성도 증가해 여성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덧붙였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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