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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디or보기]침체된 남자골프에 생기 돌게 한 ‘최경주 효과’

지난 5월19일 SK텔레콤 오픈서 극적 우승
후배들에 엄청난 자극제 돼…재점검 계기

제주 핀크스CC 18번 홀 개울안에 있는 '최경주 아일랜드'. 최경주는 지난 5월19일 끝난 SK텔레콤 오픈 마지막날 연장 1차전에서 두 번째샷이 이 섬에 안착하면서 KPGA투어 최고령 우승으로 대회 정상 등극에 성공했다. 최경주재단 제공

미꾸라지를 장거리 운송할 때 메기 한 마리를 수족관에 넣어 주면 미꾸라지가 죽지 않고 오히려 생기를 얻는 현상을 기업경영에 접목한 게 바로 ‘메기효과’다. 요즘 한국프로골프(KPGA)투어에도 그 ‘메기효과’가 아주 강하게 접목된 분위기다. 정확히 얘기하면 ‘탱크’ 최경주(54·SK텔레콤)의 우승이 가져온 선한 영향력, 즉 ‘최경주 효과’다.

최경주는 지난 19일 제주도 핀크스CC에서 막을 내린 KPGA투어 SK텔레콤 오픈에서 우승했다. 통산 43승의 레전드 최상호(69)가 보유하고 있던 투어 최고령 우승 기록을 경신한 역사적인 우승이었다.

이른바 ‘최경주의 파티’가 끝난 지 2주가량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당시 극적인 장면은 골퍼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특히 연장 1차전 때 최경주를 위기에서 구해낸 18번 홀 그린 앞 개울 안에 있던 조그만 섬은 핀크스를 찾는 골퍼들 사이에서 ‘행운의 성지’로 인기라고 한다.

핀크스CC는 그 섬에 ‘최경주 아일랜드’라는 이름을 붙여 내장객들에게 그날의 생생했던 장면을 리마인드시켜 주고 있다.

최경주의 우승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그중에서도 함께 경쟁했던 아들뻘, 조카뻘 후배 선수들의 충격은 그야말로 핵펀치를 맞은 것처럼 아주 컸다.

연장 승부를 펼쳤던 후배 박상현(41·동아제약)은 당시 대회를 마친 뒤 “18번 홀 전장, 체력적 부문 등 여러 여건상 내가 이길 줄 알았는데 졌다. 비록 우승은 놓쳤으나 그 이상의 소득이 있었다. 최 프로님을 통해 많은 걸 보고 느꼈다”고 선배의 경기력에 존경을 표했다.

지난 26일 막을 내린 KB금융 리브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한승수(37·하나금융그룹)는 최경주의 우승이 자극제가 됐다고 했다.

그는 우승자 인터뷰에서 “지난주 SK텔레콤 오픈은 날씨도 그렇고 이동 거리 때문에 힘든 점도 있었다. 그런데 우승은 최연장자인 최경주 선배님이 했다”라며 “그 장면을 보고 ‘안 된다는 것은 다 핑계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 프로님의 우승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어 “SK텔레콤 오픈 마지막 날 최 프로님의 연습과정부터 다 지켜봤다. 많이 배우고 느꼈다”면서 “꾸준히 묵묵하게 하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나보다 더 힘드실 것 같은데…”라며 더 분발해야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KPGA투어 경기위원회 최병복 팀장은 “비가 오든, 바람이 강하게 불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루틴과 템포를 유지한 채 플레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스톱워치로 타임을 체크해 보면 항상 일정했다. 그런 점은 우리 선수들도 꼭 배웠으면 한다”고 했다.

최경주의 우승에 30~40대 선수들만 자신을 돌아본 건 아니었다. 20대 선수들도 이구동성으로 그동안 해온 자신의 골프를 재점검하는 계기가 됐다는 반응이다.

최경주재단 골프 꿈나무 출신인 이재경(24·CJ)은 “요즘 성적이 안 좋은데 최 이사장님의 경기를 보면서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면서 “매년 겨울이면 동계 훈련을 함께 하자고 하셨는데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안 갔다. 올해는 자청해서 갈 생각이다. 그래서 내 골프를 처음부터 다시 점검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물론 최경주의 우승을 좋게만 보는 시각만 있는 건 아니다. 한국 남자 골프의 수준이 그 정도라며 폄훼하는 분석도 있다. 젊은 선수들이 50대 중반의 선수도 못 이기는 실력이니 남자 골프가 인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골프라는 운동이 장타로 승부를 결정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멀리 보내는 것이 경기를 좀 더 쉽게 풀어 가는 실마리가 될 순 있지만 절대적 요인은 아니다. 골프는 멀리 보내는 드라이버샷뿐만 아니라 상황에 맞는 다양한 퍼포먼스를 요하는 스포츠다.

이번 SK텔레콤 오픈에서 후배들보다 티샷이 30야드 이상 덜 나간 최경주의 우승으로 그것은 또 한 번 입증됐다. 그게 골프다. 자신의 핸디캡을 다른 장점으로 극복할 수 있는 아주 흥미로운 스포츠가 골프인 것이다. 그래서 골프를 인생에 비유하는 것이다.

최경주의 생각은 어떨까. 그는 “후배들의 기량은 세계적 수준에 근접했다”고 추켜세운 뒤 “다만 이번 대회와 같은 코스 세팅과 날씨에 대한 적응이 덜 되었을 뿐이다. 내가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후배들보다 월등해서가 아니다. 감사하게도 PGA투어에서 활동하며 그들보다 더 많은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유리했다”고 말한다.

최경주는 이어 “이번 SK텔레콤 오픈을 통해 우리 후배들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을 것이다. 그러길 정말 바란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하는 것이다”라며 “나도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 남자 골프에 대한 팬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KPGA투어는 KLPGA투어와 비교했을 때 그동안은 삭풍의 나날이었다. 하지만 이번 ‘최경주 효과’로 그 삭풍이 점점 훈풍으로 변화할 조짐이다. 지난 26일 막을 내린 KB금융 리브챔피언십 때 첫날부터 예년에 목격되지 않았던 많은 갤러리가 대회장을 찾은 것에서 그 희망의 씨앗을 볼 수 있었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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