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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분의 아이들세상] 강박증 청소년

차라리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위한 공간을 만들자

입력 : 2024-04-24 14:48/수정 : 2024-04-25 10:09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 J는 ‘날카로운 물건만 보면 상대를 찌를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생각 때문에 두려워 사람을 피하고, 가까이 있질 못한다. 대중교통을 타지 못하고 밖에 나가지 않으려 하며 집에서 컴퓨터에만 매달려 있다. 이런 식으로 삶이 망가져 가지만 강박적인 생각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고 회피할 방법만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치료의 시작은 이런 회피 노력이 무용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 노력이 의미가 없고 증상에 빠져들게 하는 덫이라는 것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자신의 경험에 접촉할 수 있는 질문을 함으로써 효과 없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도와야 한다. 상담 내용을 보자.

J: 사람을 찌를 수 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있다면 불안하지 않을 거예요.
치료자: 그것을 위해 어떤 걸 시도해 보셨어요?
J: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그냥 다른 생각을 하거나 날카로운 것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는 식으로.
치료자: 효과가 있었나요?
J: 처음엔 효과가 있었지만 조금 지나면 다시 떠올랐어요. (그렇다. 생각의 속성상 하지 않으려 하면 더 떠오르는 게 당연하다. 이것도 역시 체험하도록 도와야 한다)
치료자: 지금부터 ‘흰곰’이라는 단어를 절대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걸 떠올리는 순간 벌칙을 받는 게임입니다.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후) ‘흰곰’을 생각하지 않았나요?
J: 안하려 하니까 자꾸 더 떠오르는데요.
치료자: 또 어떤 노력을 해 보셨나요?
J: 날카로운 물건이 있는 곳에서 나가버렸어요. 아니면 사람들로부터 최대한 멀리 있으려고 해요.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치료자: 그런 행동들의 효과는 어떤가요?
J: 처음엔 약간 편해져요. 하지만 편한 건 잠시고요…. 또 금세 불안해지죠
치료자: 그게 당신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J: 친구들을 만날 수가 없어요. 친했던 친구들도 만나서 놀 수 없으니 멀어지고, 새로운 친구들도 다가갈 수 없으니 사귀질 못해요. 학교에서 완전히 혼자이고 외로워요. 교실에 있는 것도 불편하니 제대로 공부에 집중할 수도 없어요. 그래서 학교도 자주 빠져요.
치료자: 정말 재미없겠는데요. 힘든 자리를 피해 집에 돌아오면 무엇을 하나요?
J: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게임은 제가 우울해지지 않도록 해주고, 다른 사람을 해치는 위험 없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거예요.

일견 불안, 우울,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논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회피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질문을 통해 J가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효용성이 있는 것인지,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관찰하게 하고, 일시적인 편안함을 주는 것과 삶이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비교할 수 있도록 질문하여 무엇을 선택하고 행동할 것인지 결정하도록 도와야 한다. 직감적으로는 도움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점점 더 삶을 수렁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허락해 주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 된다. 쉬운 것 같지만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노력해보자.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정신과 전문의, 소아청소년 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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