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제암리교회 학살 105주기…미 선교사가 소환한 그날의 기억

화성 독립운동의 요람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15일 개관
105년 전 선교사들이 기록한 미공개 현장 사진 등 볼거리 풍성

입력 : 2024-04-17 16:00/수정 : 2024-04-17 16:00
조지 글리슨 선교사가 1919년 존 모트 국제YMCA사무총장에게 보낸 보고서에 실린 사진. 화성시독립기념관이 개관하면 최초로 공개됐다.

1919년 3월 26일부터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에서 사흘 동안 일제에 저항해 벌어진 만세운동으로 학살당한 마을이 그동안 알려진 제암리뿐 아니라 이 일대 전역이었다는 걸 증명하는 사료가 공개됐다.

15일 개관한 화성시독립기념관(기념관)은 미국 컬럼비아대에 있던 조지 글리슨 선교사의 보고서를 발굴해 일반에 공개했다.

미국 YMCA 총무였던 글리슨 선교사는 당시 만주에서 서울을 경유해 미국으로 돌아가던 중 송산면 일대의 학살 현장을 찾아 이를 사진으로 남겼다. 상하이임시정부를 비롯해 전세계 언론으로 배포된 그의 사진은 일제의 잔혹함을 폭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기념관이 이번에 공개한 넉 장의 사진은 글리슨 선교사가 존 모트 국제 YMCA 사무총장에게 보낸 ‘1919년 3월과 4월의 한국 봉기’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실려 있었다. 무엇보다 사진 뒷면에 필기체로 사진 설명이 담겨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전시된 사진은 일제가 경다리를 휩쓸고 간 뒤에 촬영했다.

사진에는 일제의 보복으로 민가가 불탔고 임시 움막을 지었다는 사진 설명대로 그을린 집과 새로 지은 작은 집들이 듬성듬성 자리한 모습이 담겨 있다. 사진으로는 정확히 파악이 안 되지만 “일경에 의해 고문당한 한국인 권서의 팔이 파랗게 변했다”는 설명도 있다. 고문당한 권서와 선교사들이 함께 사진을 찍은 곳은 불탄 경다리교회 앞이다.

일경에 의해 고문 당해 팔이 파랗게 변했다는 권서(왼쪽)가 선교사, 주민과 불탄 경다리교회 앞에서 서 있다.

이혜영 기념관 학예사는 17일 “105년 동안 제암리 학살을 중심으로 화성 일대 일제의 만행이 알려졌는데 글리슨 선교사의 사진이 공개되면서 송산면 전체에서 학살이 만연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앞으로 이 일대 독립운동과 피해 역사를 발굴하는 단초가 됐다”고 말했다. 이 학예사는 “스코필드나 언더우드 선교사의 사진도 많았지만 사진 설명이 정확하지 않아 혼란이 있었는데 글리슨 선교사의 사진엔 자세한 설명이 있어 연구에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관람객들이 17일 경기도 화성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기념관은 화성시 독립운동의 보고와도 같은 공간이다.

제암리 학살사건이 벌어진 현장 앞에 총면적 5414㎡, 지상 1층, 지하 1층 규모로 건립됐으며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어린이전시실이 마련됐다. 각 전시실에서는 선교사들이 남긴 사진과 보고서, 이 지역 독립운동가들의 재판 기록, 개항기부터 광복까지 이어진 화성 독립운동 역사가 자세히 소개돼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관하며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화성 독립운동은 일제의 잔혹함을 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됐다.

당시 화성의 주민들은 송산면사무소와 면사무소 뒷산, 사강장터 등에서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던 중 시위를 강경 진압한 노구치 고조 일본 순사부장을 살해했다. 일제는 주모자 검거와 수사, 재판으로 이어지는 통상 절차를 생략한 채 송산면 일대 15개 마을에서 학살을 자행하며 피의 보복을 했다.

제암리교회 학살도 1919년 4월 15일 일본군 육군 보병 79연대 소속 아리타 도시오 중위가 이끄는 부대가 16세 이상 남자 21명을 교회에 모아놓고 출입구와 창문을 봉쇄한 뒤 일제 사격을 가하고 불을 질렀던 만행이었다.

화성=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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