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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에 휩쓸려…세월호, 10년간 9번 조사에도 매듭 못 지어

[열 번째 봄의 할 일] ②남은 질문, 답을 찾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전남 목포신항에서 녹슨 세월호 선체를 배경으로 시민들이 걸어둔 노란 리본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 동안 참사 원인과 구조 실패를 둘러싼 수사와 조사가 수차례 이뤄졌다. 공적 조사기구 3개와 검경합동수사본부, 특별수사단, 특별검사 등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기구가 만들어졌다. 이후 10년에 걸쳐 9번의 조사가 진행됐다. 정쟁에 휘말린 4·16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최종 보고서에 합의된 결론을 담지 못했다. 사고 조사를 맡은 위원회나 기관이 여론과 정치권에 흔들리면서 유족의 불신만 더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렇듯 지난 10년은 재난조사의 경험이 부족했던 한국 사회가 적잖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한 시간으로 기록됐다.

세월호 참사의 정쟁화

참사 직후 세월호특별법 제정 단계부터 정쟁은 시작됐다. 2014년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은 박근혜정부의 책임을 부각했다. 야당은 유족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방향으로 특별법을 추진했다. 특조위에 수사권을 부여하라는 요구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여야는 특조위 추천 위원 선정을 두고 진통을 겪었다. 여야가 지난한 줄다리기를 벌인 끝에 국회는 참사 발생 7개월여 만인 2014년 11월 세월호특별법을 통과시켰다. 특조위는 참사가 일어난 지 약 1년 만인 2015년 3월에야 활동을 개시했다.

반면 수사기관의 수사는 신속하게 이뤄졌다. 검찰과 경찰은 사고 발생 하루 만인 2014년 4월 17일 검경합동수사본부를 구성했다. 검경은 수사 착수 6개월이 채 안된 시점에 세월호 선장 이준석씨와 김경일 해경 123정장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4·16기억교실에서 추모객들이 참사 희생 학생들을 그린 캐리커처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검·경은 침몰 원인에 대해서도 ‘선사 측의 무리한 증톤(t)과 조타수의 조타 미숙으로 대각도의 변침이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이 선장과 김 정장은 특조위가 활동을 시작한 2015년 11월 대법원에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특조위에 참여했던 박상은 전 조사관은 15일 “수사와 조사가 따로 진행된 것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사가 먼저 진행되면서 증언자들의 증언이 오염되고, 공문서와 같은 기록이 보관기간이 지나 폐기되는 등 증거도 사라졌다”고 했다. 참사가 일어난 구조적 원인 조사보다 법적 처벌과 책임을 묻는 데 무게가 실리면서 정치권은 극한 대치를 벌였다. 정치권의 개입으로 정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던 세월호 참사는 이렇듯 조사기구 출범과 활동이 쉽지 않았다.

부정적 선례 남긴 선조위

박근혜정부에서 운영된 특조위는 사실상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했다. 정권은 세월호 유족 사찰 의혹과 특조위 시한 단축을 통해 활동을 방해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특조위는 1년3개월 만에 성과 없이 활동을 종료했다.

잊히던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과 세월호 인양이 맞물리며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10일 탄핵당했다. 세월호는 그로부터 13일 뒤 육지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문재인정부 출범을 앞둔 시점에 선체조사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했다.

선조위는 바닷속에 잠겨 있던 블랙박스와 희생자의 휴대전화 등 영상기기를 바탕으로 침수 경로와 배의 기울기 등을 추정해냈다. 1년6개월간의 조사 끝에 최종 보고서에 두 개의 결론을 도출했다. 하나는 세월호의 과적과 조타 장치의 고장으로 배가 기울었고, 복원력을 상실해 결국 침몰했다는 가설(내인설)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외부 충돌설(외력설)이었다.

선조위 내부의 중론은 내인설이었다. 그러나 여야가 선조위 위원으로 추천한 인사들은 진영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당시 선조위원은 총 8명. 이 중 5명이 국회 추천이었고, 3명은 희생자 가족대표가 선출했다. 당시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각각 2명씩, 바른정당이 1명을 추천했다. 장범선 서울대 조선공학과 교수가 ‘외력설’에 도장을 찍으며 선조위는 최종 보고서에 외력설 가능성을 첨부했다. 정준모 인하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장 교수도 내인설이라고 일관되게 말했지만 여러 가지 원인을 더 보자는 취지로 두 개의 가설을 담은 열린 안에 도장을 찍었는데 그게 결국 국민적 합의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선조위의 전철을 밟은 사참위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4·16연대 대회의실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시민사회 불법사찰 관련 2차 국정원 정보공개청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선조위가 애매한 결론을 내리면서 세월호 유족의 진상 요구 목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4·16가족협의회 등 유족단체들은 “세월호 침몰 원인을 앞으로 계속 밝히라”며 전면 재조사를 요구했다. 특별수사단 구성을 통해 국방부·국정원·기무사 등 전방위적인 추가 조사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족 요구에 따라 꾸려진 특수단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김석균 전 해경청장을, 특조위 활동 방해 혐의로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재판에 넘겼다. 특수단은 청와대의 수사 외압, 국정원의 유가족 사찰 등 사참위가 제기한 13개 혐의에 대해 모두 ‘혐의없음’ 처분했다. 세월호 CCTV 조작 의혹은 사참위 요구에 따라 앞서 출범한 특검에 이관했다.

사참위는 특수단의 결론에 “우려스러운 결론”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특검 역시 CCTV 조작의혹 사건에 대해 전부 증거·혐의없음 처분했다. 그리고 2022년 6월 3년6개월의 활동을 마친 사참위는 선조위와 똑같이 내인설과 외력설을 모두 담은 최종 보고서를 선택했다. 한때 진보 진영에서 제기했던 ‘앵커(닻) 침몰설’ 등은 음모론에 가까운 것으로 과학적 조사를 통해 인정되지 않았다. 대표적인 외력설인 잠수함 충돌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진영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사참위는 열린 안을 선택하는 결정을 내렸다.

줄기찬 재조사 요구에 피로감도

사참위와 특조위, 검경합동수사단과 특별수사단, 감사원 감사, 국회 국정조사 등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은 지난 10년간 수차례 이뤄졌다. 하지만 유족의 슬픔과 분노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유족들이 재조사를 거듭 요구하자 ‘검찰과 경찰, 조사기구도 못 믿으면 누굴 믿느냐’는 식의 부정적 여론마저 형성됐다.

참사 초반 정치권에서 대학특례입학, 의사자 지정 추진 등 포퓰리즘적 법안을 앞다퉈 내놓은 것도 유족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만들었다. 사망자 전원 의사자 지정, 공무원 시험 가산점, 유족 평생 생활안전지원 대책 등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온라인상에 떠돌았다. 게다가 일부 정치인은 세월호 때문에 정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보수 지지자를 겨냥해 세월호 유족을 폄훼하고 조롱했다. 세월호 유족은 외딴섬이 되어 갔다.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 우리에게 남은 것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오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진도항)에서 노란 리본이 봄바람에 펄럭이고 있다.연합뉴스

10년간 거듭된 시행착오로 한국 사회에 재난조사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 전 조사관은 “재난이라는 특성상 100% 당시 상황을 복원할 수 없다”며 “80~90% 복원됐을 때 10~20%는 우리가 영원히 알 수 없는 한계로 인정하고 그때쯤 사고 원인에 대한 합의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10년에 걸친 조사를 통해 모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공인할 만한 해석을 내놓는 작업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선조위와 사참위의 가장 큰 한계로 지적되는 것은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참위 활동 종료 당시 비상임위원이었던 황필규 변호사는 “정치권에서 나눠 위원을 추천하는 방식이다 보니 특정 정당이나 본인들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되는 한계가 있었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전문성도 부족했다. 사참위에 자문을 했던 정준모 교수는 “사참위 최고의결기구인 전원위원회에도 전문가가 아닌 변호사가 대다수였다”며 “기술적인 부분을 이해하기 어려우니 해당 분야 전문가가 전원위원회에 많이 포함됐어야 했다”고 했다. 그는 사참위 내 조사기구인 진상규명국에 대해서도 “조사관들이 중간에 많이 나가고 들어오고 바뀌었지만 전문적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수차례 조사 결과를 납득하지 못하는 유족과 피해자를 설득하지 못했던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박 전 조사관은 “유족들은 조타기의 부품 때문에 자식을 잃었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며 “그것 때문에 사고가 났다는 것이 곧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거듭 설득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형 참사가 일어나면 저마다 문제의 원인을 추론하고, 거기에 부합하는 정부나 전문기관의 발표가 나오지 않으면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정치권이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고 공동체 차원의 회복과 치유를 도모해야 한다. 하지만 여야는 매번 진영의 이해관계를 앞세워 싸우기에만 급급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형 안전사고가 일어나면 석연찮은 부분이 있기 마련이고, 이런 의구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며 “유족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걸 비난하기보다 치유될 수 있도록 ‘사회적 의례’를 통해 보듬고 포용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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