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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의 세상만사] 선거가 끝나고


“한고조 유방은 한신의 모반을 권했던 책사 괴통을 찾아내 직접 힐문하고 삶아 죽이라는 명을 내린다. 이에 괴통이 ‘진나라가 망한 후 천하의 영웅들이 앞다퉈 사슴을 쫓았지만, 그 중 가장 지략이 뛰어나고 민첩한 폐하가 잡았습니다. 당시 신은 한신을 알고 폐하를 알지 못한 죄밖에 없습니다. 천하가 평정된 지금 축록(逐鹿)의 건으로 죽이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습니다’라고 항변하자, 유방은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해서 괴통을 살려주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회음 출신인 한신의 일대기를 기록해 놓은 ‘회음후열전’의 일부분이다. 여기서부터 ‘사슴을 쫓는다’는 의미의 축록(逐鹿)이 천하의 패권을 놓고 다투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겨루고 쫓는다는 뜻의 각축(角逐)도 여기서 파생된 말이다.

한편, ‘축록자불견산(逐鹿者不見山)’이라는 성어가 있다. ‘사슴을 쫓는 자, 산을 보지 못한다’라는 뜻이다. 이에 덧붙여 쓰는 성어로 ‘돈을 움켜잡는 자, 사람을 보지 못한다’라는 뜻의 ‘확금자불견인(攫金者不見人)’이 있다. 어느 도둑이 새벽에 일어나 금방의 금을 훔쳤는데 시장 관리인이 붙잡은 후 “왜 남의 금을 훔쳤느냐”고 물었더니, 도둑이 “금을 가지고 갈 땐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금만 보였다”고 대답한 데서 유래한다.

사슴만을 뒤쫓는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 산의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어 주변 정세를 파악하지 못하고, 돈과 권력을 탐해 욕심을 내면 곧 자신의 앞을 밝혀주는 진리가 가려져 오로지 탐욕에만 눈이 어두워지는 것을 빗댄 성어이다. 흔히 돈이나 명예, 권력 등을 탐하는 것에 눈이 멀어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거나 대의를 망각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경계하는 의미로 쓰인다.

어느 시대나 진정한 리더는 산을 볼 여유를 잃은 채 사슴을 쫓아서는 안 되고, 금만 보다가 사람을 보지 못해서는 안 된다. 설령 사슴이나 금을 놓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잡은 사슴이나 훔친 금은 극히 일부만이 독점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혹시 ‘마키아벨리즘’이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인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정치가는 그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해도 좋다. 정치는 일체의 도덕·종교에서 독립된 존재이므로 일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이 비록 도덕·종교에 반하더라도 목적 달성이란 결과에 따라서 수단의 반도덕성, 반종교성은 정당화된다.”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사슴을 잡았다고 한들 그 사슴을 독점하지 않고 대중에게 나눠주겠는가.

요란했던 제22대 국회의원선거가 정부·여당의 대패로 마무리되었다. 이를 계기로 정부·여당은 지난 2년 동안 마키아벨리즘에 경도된 채 사슴만 쫓다가 산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성찰해 볼 일이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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