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세상] 자기 비난하는 아이

부정적인 내면 목소리도 그냥 존재하도록 허용


부모로부터 언어적 폭력, 신체적인 폭력을 당해온 아이들은 ‘수치심’을 갖게 된다. 이는 폭력에 대한 반응이면서 동시에 자기를 방어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자기 비하, 자기비판의 습관에 젖어 들게 된다.

중학교 2학년 여학생 M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폭언과 심각한 체벌을 받아 왔다. 현재는 부모님이 이혼한 상태로 어머니와 살고 있지만, 여전히 우울함에 빠져 있고 무기력하다.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늘 방안에서 스마트폰에 빠져 있다. 자신이 부족하고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 친구들에게 자신을 보여주기 두려워한다. 그러니 친한 친구도 없고, ‘난 한심한 사람이야’ ‘잘하는 게 없고, 게을러서 희망이 없어’라며 공부에도 관심이 없다.

M과 같이 학대적인 환경에서 벗어났음에도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혀 스스로를 비난하며 가치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행동에 빠져 있는 경우에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다루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자기 비난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알아차리고 이와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관찰하도록 도와주는 것도 필요하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내면의 목소리를 물화하여 하나의 물건처럼 바라보는 거다. 예를 들어 “너의 ‘내면의 목소리’를 보고 만질 수 있는 물체라고 가정하는 연습이다. 네가 원하는 대로 볼 수 있어.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눈을 지그시 감거나 바닥에 있는 점을 보자. 이제 너의 내면의 목소리가 너의 밖에 것이라고 상상해 보자. 어떤 모양으로 해 볼까? 무슨 색일까? 몇 도 정도일까? 뜨거운가 차가운가? 얼마나 큰가?”라고 질문하며 자신을 비난하는 내면의 부정적인 생각을 물체로 가정해 보는 것이다. “너의 몸을 의식하고, 거기에 있는 어떤 감각들을 말하고, 원한다면 그것들이 어떤 감정들과 연결되어 있는지 이야기해 보자” “감정과 감각, 생각을 지켜보다가 숨을 부드럽게 쉬어보자”

이 연습의 목적은 비난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없애거나 그것과 싸워서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을 인식하고 행동에 대한 선택할 공간을 갖기 위한 것이다. 인식하고 관찰하는 공간에서는 부정적인 내면의 목소리도 그냥 존재하도록 허용하는 거다. 그것을 물리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그것은 더 힘이 세져서 기승을 부리고 크게 자리 잡기 마련이다. 그러니 그저 거기에 있도록 그냥 놔두자. 그러면 그것은 왔다가 다시 물러날 것이다.

이제 자신에게 친절하게 행동하면 어떻게 되는지 스스로 물어보자. 지금 잠시 자신에게 친절하게 행동하는 자신을 상상해 보자. 어떤 감정이 나타날까? 두려움이나 분노, 수치심, 미움 등등 감정도 알아차리자. 감정도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자. 중요한 것은 부정적인 감정, 즉 두려움이나 불안함, 수치심 등의 감정에 그대로 느끼면서 머무를 용기가 있는지에 있다. 날씨는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한 것처럼 감정과 생각의 흐름도 그렇다. 그리고 선택해 보자. 자신에게 비난을 퍼부을지,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할지, 자신의 성장을 위한 행동을 할지, 여기에서 멀어지는 행동을 할지.

M은 수치심, 분노를 피하지 않고 용기 있게 받아들이고 그 공간에서 감정이 오고 가는 흐름을 관찰하면서 가치에 다가가는 행동을 할 것인지, 물러나는 행동을 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었다. 마음을 열고 친구들에게 다가갈 것인지, 회피하며 혼자가 될 것인지. 자신의 성장을 위해 공부를 할 것인지, 회피하기 위해 스마트폰의 세상으로 들어갈 것인지. 자신이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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