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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그린 보편적 정서 ‘패스트 라이브즈’…셀린 송 “‘인연’은 관계에 깊이 줘”

셀린 송 감독. CJ ENM 제공

“그 때 보자.”

해성(유태오)이 복잡한 얼굴로 짧은 작별 인사를 건넨다. 어릴 적 첫사랑 나영(그레타 리)을 만나기 위해 24년의 시간을 건너 뉴욕으로 날아 온 해성은 나영과의 인연에 대해 자신만의 결론을 내린다.

둘도 없는 친구였던 나영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후 해성이 늘 나영만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 속에서 잊은 적은 없다. 군 생활 중 나영을 떠올린 해성이 SNS를 통해 나영을 찾았고, 12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은 온라인 영상 통화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한다.

하지만 인생의 시기에서 각자의 눈앞에 떨어진 과제가 있었다. 한국과 미국의 거리는 가깝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해성과 나영의 인연을 다시 갈라놓았다. 그렇게 다시 12년이 흘렀다.


오는 10일(현지시간) 열리는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 각본상 후보에 오른 ‘패스트 라이브즈’가 6일 개봉한다. 지난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된 ‘패스트 라이브즈’는 전 세계 영화제에서 72관왕을 차지하고 2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기염을 토했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감각적인 연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인연’이라는 주제를 통해 영화는 사랑의 의미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나영과 해성이 첫사랑에 고하는 ‘뜨거운 안녕’을 누군가는 슬프게, 누군가는 후련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결국 서로에게 닿지 않았지만 이 영화는 어떤 영화보다 낭만으로 가득차 있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사진. CJ ENM 제공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셀린 송 감독은 29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애 이야기와 사랑 이야기는 다르다. 전자는 두 사람이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거나 결혼해서 사는 것인데 사랑은 어느날 친구와 깊은 대화를 하다가 느낄 수도 있는 감정”이라며 “이 영화는 장르로서의 로맨스보다 우리 인생 자체에 있는 로맨틱함을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칠게 느껴지는 질감, 전형적이지 않은 카메라의 움직임은 하나의 관람 포인트다. 송 감독은 이에 대해 “카메라가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 관객들이 카메라의 움직임을 느끼면 몰입에 방해가 될 수 있다”며 “두 사람이 대화를 엿듣는 느낌을 주기 위해 카메라를 한 곳에 두고 중간에 컷도 하지 않고 길게 촬영한 신이 있다. 반면 나영과 해성이 재회하는 신은 카메라가 어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카메라가 주인공이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파나비전의 코닥 35mm 필름으로 찍었다. 국내에선 더이상 필름 영사기를 사용하지 않고 디지털영사기를 사용한다. 송 감독은 촬영한 필름을 디지털 변환하기 위해 매일 포장해서 미국으로 보내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송 감독은 “화물로 보낼 때 엑스레이를 잘못 통과하면 필름이 망가지기에 늘 조마조마했다”며 “필름 촬영하는 카메라팀도 한국에 없어서 뉴욕에서 촬영팀을 데려왔다”고 했다.

극작가로 10여년 간 활동한 송 감독은 영화 데뷔작으로 놀라운 성과냈다. 왜 연극이 아닌 영화로 이 이야기를 그렸을까. 송 감독은 “이야기 자체가 영화적이라 생각했다. 한국에서 온 친구, 남편과 함께 뉴욕의 바에 앉아있다가 영화를 구상하게 됐다”며 “이 영화의 빌런(악당)은 24년이란 세월, 태평양이란 공간이다. 서울과 뉴욕의 색감, 냄새 등이 각각 표현돼야 했고 열두 살 짜리 어린아이와 마흔이 된 어른이 같은 인물이라는 점이 시각적으로 보여야 했다”고 말했다.

인연을 다루는 영화를 찍으며 송 감독도 인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그는 “인연은 인생의 작은 관계에도 깊이를 준다. 내 인생을 좀 더 깊게 바라볼 수 있는 말”이라고 정리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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