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교회로 가는 길⑥]교회에서 ‘기후 부흥집회’를 열 수 있을까

기후변화와 예배의 변화 / 장준식 세화교회 목사

2021년 그리스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에비아섬의 구브스 마을로 산불이 접근하며 시뻘건 불길과 연기가 치솟는 모습. AFP연합뉴스

인간을 정의하는 용어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입니다. 합리적 근대 사상을 열었던 데카르트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인간종(species)을 생각할 때 다른 생물 종보다 두드러진 점 중 가장 먼저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이성(reason)’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성의 능력)’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 덕분에 인간은 다른 생물 종 위에 군림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생각의 능력(이성의 능력)’은 참 놀라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놀라운 능력이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면 인간은 그 능력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이기 때문에 다른 생물 종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을 누리고 살지만 바로 그 능력이 자신의 생명뿐 아니라 다른 종들의 생명까지도 위협하고 있다면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인간을 정의하는 용어 중 오늘날 회복되고 강조돼야 할 것은 ‘호모 리투르기쿠스’(Homo Liturgicus)입니다. 제임스 스미스(James K. A. Smith)는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일차적으로 우리는 합리적 인간(homo rationale)이나 도구적 인간(homo faber), 경제적 인간(home economicus)이 아니다. 심지어 흔히 말하는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도 아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예배하는 인간(homo liturgicus)이다.”(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57쪽) 제임스 스미스가 ‘예배하는 인간’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성의 독주로 인해 망가진 세상을 회복하기 위해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을 우리 시대에 복원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의 열망이 가득한 세상을 꿈꿨던 위대한 그리스도교의 교부입니다. 자신의 책 『고백록』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가감 없이 고백합니다. “당신은 우리 인간의 마음을 움직여 당신을 찬양하고 즐기게 하십니다.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서(ad te)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in te) 안식할 때까지는 편안하지 않습니다.”(선한용, 45쪽) 이 구절을 쉬운 말로 옮기면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 우리는 당신을 마음껏 사랑하도록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창조된 존재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인류를 ‘예배하는 인간(homo litrugicus)’으로 명명하는 것이죠. 사랑은 상대방을 숭배하는 일, 곧 예배하는 일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사랑 빠지면 인간은 말과 행동이 바뀝니다. 사랑의 대상을 향한 숭배의 말과 행동이 넘칩니다. 상대방을 향한 나의 언어와 행동이 숭배로 넘친다면 그것은 사랑에 빠졌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은 곧 예배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곧 예배하는 일과 같습니다. 신앙인이 예배를 열심히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사랑의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기후교회』에서 짐 안탈은 기후위기를 맞아 교회의 예배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 도전을 주고 상상력을 제공합니다. 그의 도전 중 눈 여겨봐야 할 것은 현재 우리의 예배가 너무 인간 중심적이라는 비판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온통 인간의 구원에만 집중됐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 중 예배에 참석할 수 있는 존재는 마치 인간 외에는 없는 양, 우리는 다른 모든 피조물이 제외된 오직 인간만이 참여하는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비판하기 위해 짐 안탈은 윤리학자 윌리스 젠킨스(Willis Jenkins)를 인용합니다. “생물학적인 것들이 사라지는 가운데서 다른 피조물들이 없는 예배드리기는 예배 회중들이 피조물을 소멸시키는 힘에 대해 무관심하게 만든다.”(기후교회, 207쪽)

이 세상 모든 만물이 인간과 똑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창조됐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예배드리기’는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후위기를 맞아 ‘예배하는 인간’에게는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선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예배 시간에 인간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키우는 반려동물이나 반려식물 등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성만찬의 빵과 포도주를 인간에게만 나누어 줄 것이 아니라 반려동물에게도 나누어 주는 일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창조됐고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도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만이 아닌 모든 피조물이 참여하는 예배를 상상한다는 것은 인간이 기후변화에 끼치고 있는 해악을 반성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기후위기를 초래한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키려는 의지에 대한 반영입니다. 예배의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일입니다. 일례로 1960년대 초반 미국에서 흑인 인권운동이 한창일 때 미국 남부에 있는 흑인교회들은 그들의 예배를 흑인 인권에 초점을 맞춰 구상했습니다. 그 결과 흑인 인권 운동은 성공을 거뒀고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데 이바지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의 힘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무슨 경험이 예배의 중심이 돼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역사의 요청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예배를 구성하게 될 때 현재 우리의 예배는 기후위기의 경험이 예배의 중심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

기후위기를 맞아 『기후교회』에서 제시되고 있는 혁신적인 예배 중 우리가 어렵지 않게 실천해 볼 만한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기후 부흥 집회(Climate Revival)’입니다. 우리는 대개 ‘성령 부흥 집회’나 ‘말씀 부흥 집회’에 익숙하지만, 성령이나 말씀이 기후위기를 무시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기후위기를 겪는 우리 시대에 성령과 말씀은 기후위기에 대해 우리에게 하실 이야기가 더 많으실 겁니다. 기후위기에 맞서는 것이 우리 시대에 긴급히 요청되는 사명인 만큼 교회들이 연합해 ‘기후 부흥 집회’를 열어 기후위기를 초래한 우리들의 죄악을 회개하고 생명의 지속적인 번영을 위해 하나님의 은총과 지혜를 간절히 구하는 일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인 듯합니다.

『기후교회』에서 제시되고 있는 혁신적인 예배의 다른 하나는 ‘길 위에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는 교회 공간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에 익숙합니다. 다른 말로 ‘시민 불복종예배’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예배는 예배 의식을 현장으로 끌고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미 의식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길 위에서 드리는 예배’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건설현장이나 사회정의를 해치는 일이 진행되는 곳, 또는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고 있는 곳으로 직접 발걸음을 옮겨 바로 그곳에서 현장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주일에는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만, 토요일이나 공휴일에 자연이나 인간에 대해 불의가 행해지는 현장에 가서 예배드리는 일을 교회가 적극적으로 실행한다면 지금처럼 교회가 사람들에게 외면당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풍경이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탄생하셨을 때 선포된 이 말씀이 실현되는 것이겠죠.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우리는 예배하는 인간(homo liturgicus)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배하는 인간으로 불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사랑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의 예배는 너무 인간 중심적인 예배에만 머물렀습니다. 마치 하나님은 인간만 창조하시고 나머지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닌 듯 인간은 자기를 사랑하는 데만 몰두하고 나머지 피조물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착취하고 파괴해 왔습니다. 그 결과 인간이 경험하는 현실은 ‘기후위기’입니다. 이는 사랑의 실패요 예배의 실패입니다. 예배하는 인간으로서 우리 다시,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게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모든 피조물이 참여하는 예배를 상상하며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사랑’에 있는 듯합니다.

장준식 세화교회 목사

손동준 기자 sd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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