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에 맡긴 ‘기업 밸류업’… 저PBR주 실망매물 쏟아졌다


상장사들은 이르면 오는 7월부터 기업가치를 높이려는 계획을 스스로 세워 공시하게 된다.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26일 발표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에 따른 것이다. 공시 원칙과 방법, 내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6월 확정된다. 강제사항은 없다. 인센티브를 제공해 상장사들의 자율적인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것이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 구상이다.

다만 강제성이 없는 만큼 인센티브의 구체성이 중요한데 발표 시점이 특정되지 않아 시장 전문가들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며 실망적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이날 코스피는 실망 매물이 나오며 전 거래일보다 20.62포인트(0.77%) 하락한 2647.08에 마감했다. 저(低) 주가수익비율(PBR)주 중심으로 매도세가 집중됐다. LG(-7.49%) 현대해상(-7.07%) 하나금융지주(-5.94%) 삼성물산(-4.81%) 등이 동반 급락했다.

이날 금융위원회가 유관 기관과 함께 발표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에 따르면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2400여곳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스스로 수립하고 1년에 한 번 각사 홈페이지와 한국거래소를 통해 자율 공시하게 된다. 공시는 ‘현황진단→목표설정→계획수립→이행평가·소통’ 순으로 작성한다. 시장 참여자들이 해당 공시를 투자에 반영하는 방향으로 자본시장 선순환을 끌어낸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기업가치 제고 공시를 상장사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맡길 계획이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패널티가 없다는 게 일본판 밸류업 프로그램과 다른 점”이라며 “진정성이 중요하므로 당장 여력이 안 되는 기업들은 참여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공시 의무화는 오히려 의미 없는 형식적 계획 수립‧공시만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설명이다.

대신 강력한 인센티브로 상장사들이 참여할 유인을 만들겠다는 것이 정부 구상이다. 시장에서 가장 주목하는 인센티브는 세제 혜택이다. 현재 배당 소득세 감면과 분리 과세 등이 검토되고 있다. 다만 구체적 세제 지원안은 이날 공개되지 않았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이른 시일 내에 추가 세미나 등을 통해 밸류업 가이드라인을 확정하고, 세제 지원 방안은 준비되는 것부터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유관 기관은 또 기업가치 성장이 예상되는 기업으로 구성된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개발해 3분기 안에 발표할 계획이다. 연내 업계와 협업해 해당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도 출시한다. 동시에 ‘스튜어드십 코드’ 가이드라인에 투자 대상 회사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수립·시행하고, 시장과 소통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담아 기관 투자자들이 투자에 고려하도록 할 계획이다.

정부는 상법 개정에도 나서기로 했다. 이사의 책임을 강화하고 주주총회 내실화를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이사가 주주의 이익을 위해야 한다는 내용을 상법에 넣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지만 정부는 배임 문제 등을 우려해 포함하지 않았다.

증시 관계자들은 이날 발표에 대해 대체로 실망적이라고 평가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높아질 대로 높아졌던 시장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며 “이제는 중장기적인 정책 방향으로서 지켜봐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강제성이 없어 정부 메시지가 모호하게 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PBR 등 투자지표를 공표하는 계획에 대해 “PBR이 낮은 기업들은 부끄러움을 느끼라는 것인지, PBR이 낮으니 (저평가돼서) 투자를 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움직일만한 강제성을 띄어야 정책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날 한국거래소에서 진행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에서도 기업 참여를 위한 확실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PBR이 높은 기업에 대해 상속·증여세를 감면하는 전향적 방안 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 또한 “자사주 매각이나 배당, 투자 등 다방면에 걸쳐 실질적이고 강력한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광수 심희정 기자 g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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