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그때 그 의사

강창욱 산업2부 차장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할 때마다 생각나는 의사가 있다. 어떤 일탈 때문에 취재 선상에 올렸던 사람이다. 당시 서울 시내 모 병원 1년차 레지던트(전공의)였다. A씨라고 하자. 그가 학창시절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배경엔 2000년 의약분업 사태가 있었다. 약학 전문가인 약사가 의사를 거치지 않고는 간단한 약도 짓지 못하게 된 사건이다.

고교생 때 A씨는 의약분업 사태를 “​의사들이 파업으로 환자를 인질 삼아 정부에 이긴 사례”라며 높이 평가했다. 의사는 그렇게 강력한 집단이면서 ‘이과계에서 가장 전망 있는 직업’이고, 개업의 평균 소득이 그때 기준으로 월 700만원이 넘는 데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상류층 직업’이라는 점 등을 A씨는 의사를 꿈꾸는 이유로 들었다.

그는 명문 의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드나들었는데 이때 모 의대를 ‘최하위 의대’라며 폄하했고 또 다른 몇몇 의대를 ‘초초초쓰레기 돌팔이 의대’로 싸잡았다. 어떤 의대는 ‘돌팔이를 배출하는 쓰레기’라고 비하했다. 10대였던 그에게선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보며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아 분노하는 것과 같은 자격지심이 엿보였다.

그가 진학을 희망한 대학은 A의대, B의대, C공대 순이었다. 정작 수능에선 자신이 ‘돌팔이를 배출하는 쓰레기’라고 했던 의대에 원서를 넣을 만큼의 점수도 나오지 않았다. 지원 가능한 의대는 4곳뿐이었는데 ‘최하위 의대’와 ‘초초초쓰레기 돌팔이 의대’가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어디는 종교 때문에 자격 미달, 어디는 학생부 반영 비율이 너무 높아 불리, 또 어디는 수능 등급 미달로 지원조차 불가였다. 마지막 한 곳은 너무 멀어서 포기했다.

결국 의대를 접어두고 서울권 2개 공대에 지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겐 “그딴 거 알아주기나 하느냐”며 “그래 봤자 공돌이인데… 고귀한 의사랑 비교도 안 된다”고 투덜거렸다. 아무 곳이나 붙으면 등록만 해놓고 의대를 목표로 재수할 생각이었는데 C공대도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C공대 따위도 떨어지다니 개 쪽팔린다”며 “D공대마저 떨어지면 인간쓰레기 인증을 받는 것”이라고 자학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런 자신을 ‘쓰레기’라고 한 명문 의대생에게는 “(나도) A의대에 반드시 진학해서 나보다 낮은(못한) 애들을 쓰레기라고 자신있게 말할 것”이라고 대꾸했다.

이듬해 그는 A의대엔 못 갔지만 B의대에 합격하며 어쨌든 자신이 원했던 의사의 길에 첫발을 내디뎠다. 숙원을 풀어서인지, 철이 들어서인지 히스테릭한 언행은 모래 위로 이어지다 도중에 뚝 끊긴 발자국처럼 사라졌다. 골방에서는 여전히 남을 멸시했는지 몰라도 학교에서는 누구 못지않게 성실한 의대생이었던 듯했다. 우월감을 만끽하느라 이제는 남을 무시할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몇 년 뒤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했고 무사히 졸업했다.

내가 A씨의 흑역사를 들춰보게 된 건 그가 인턴(수련의) 생활을 마치고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막내 레지던트로 근무할 때였다. 그는 어느날 자신이 병원 복도에서 응대한 20대 여성 외래환자의 차트에 적힌 이름과 휴대전화번호를 따로 기록해뒀다가 사적으로 연락했다. 의료 윤리는 물론 의료법과 개인정보보호법 같은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는 행동이었다. 그는 여자에게 의사 신분을 밝히며 “그쪽이 마음에 들어 연락했다”고 했다.

A씨는 카페나 식당처럼 공개된 장소가 아니라 자신의 차 안에서 만나길 원했다. 사실상 초면인 여자에게 “스킨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너희 집에 가고 싶다” “아침에 네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다” 같은 말을 했다. “스킨십에 대해 왜 묻느냐”고 하자 “전 여자친구가 그 부분에 보수적이라 잘 안 맞았다”고 했다.

거리를 두기 시작한 여자에게 레지던트는 계속 추파를 던졌다. 여자가 그의 온라인 메신저 인사말에 적힌, 암호 같은 알파벳들로 검색했더니 제3의 여자가 등장했다. 여자친구가 있었단 말인가. 스킨십 문제로 헤어졌다는 여자친구일 수도 있었다. 여자는 제3의 여자에게 전화해 A씨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 여자는 “제 남편”이라고 대답했다.

A씨는 결혼한 지 1년을 조금 넘긴 상태였다. 의사라는 자칭 ‘고귀한 신분’을 이용해 여자 환자에게 치근대며 바람이나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 노련함이나 대범함으로 볼 때 처음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병원을 상대로 취재가 시작되자 A씨는 피해 여성에게 십수 차례 메시지와 전화로 살려달라고 읍소했다. 연락을 차단당하자 그의 아내가 대신 사과하며 용서를 구했다. 남편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 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피해 여성과 상의 끝에 기사화하지 않았다. 명백한 잘못이었고 의사 윤리에 경종을 울릴 만한 사례였지만 젊은 의사에게 기회를 주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본인이 피해 여성과 병원, 아내 등 모든 관련자에게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고 피해 여성도 관계를 더 진전시키지 않고 물러섰으니 복구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가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A씨가 지레 겁을 먹고 벌벌 떠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벌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A씨 아내의 간곡한 호소도 참작됐다. 대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지도교수가 A씨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고, 병원 차원에서 의사 대상 예방 교육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10여년이 지났다. 구사일생한 A씨는 현재 개업의로서, 대형병원 외래교수로서 어엿한 전문의 노릇을 하고 있다. 나는 그가 왜 의대에 갔든, 살면서 어떤 허튼짓을 했든 얼마든지 ‘좋은 의사’로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되길 바랐다. 다행히 그는 성실한 의사, 충실한 가장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그에게는 달갑지 않겠지만 의사들이 세력을 과시하듯 마음에도 없는 사직원을 치켜들고 환자를 볼모로 오만하게 집단행동에 나설 때마다 A씨가 의사가 된 계기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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