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마지막날, 가계부 앱 열어보고 ‘깜놀’…“과일 채소 너무 비싸요”

12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과일 판매대에서 쇼핑객이 과일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명절 연휴 마지막 날 가계부 앱을 점검하던 신영주(46)씨는 허리를 곧추세우고는 태블릿 PC를 켜고 계산기 앱을 열었다. 맞벌이로 두 자녀를 키우며 바쁜 신씨는 최저가 검색을 하거나 가격 비교를 하지 않는 편이다. 필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샀는데, 작년 추석보다 지출 규모가 배 가까이 늘었다.

신씨는 “시간이 돈이니까 가격비교는 하지 말자고 생각했고, 과일 채소 고기는 국산이 좋으니까 조금 비싸도 기꺼이 사는 편이었다”며 “하지만 3~4개월 새 비슷한 규모의 소비에 지출이 배 가까이 되는 걸 보면서 심각한 고물가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신씨처럼 이번 명절 준비를 하면서 고물가를 절감한 소비자들이 적잖다. 채소 과일 고기 수산물 등 신선식품을 사면서 어느 때보다 높은 물가를 확인할 수 있는 설 연휴였다. 12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애호박 1개 가격은 3105원이었다. 규격화된 인큐애호박 1개 가격은 오랫동안 1000~2000원 초반대를 유지했는데, 이번 설에는 3000원대를 돌파했다. 1년 전 가격(2446원)보다 27.0% 상승했다.

오이나 시금치처럼 명절에 주로 쓰이는 식재료 가격도 급등세를 피하지 못했다. 오이는 개당 가격이 2436원으로 1년 전 2086원보다 16.7% 올랐다. 시금치는 100g 가격이 1074원으로 1년 전 855원보다 25.6% 상승했다. 시금치가 보통 400g 한 단으로 판매되는 걸 감안하면, 잡채 2~3인분에 들어갈 시금치 한 단에 약 4300원이 드는 셈이다. 명절에 최소 4인분 이상의 잡채를 만든다고 감안했을 때 시금치에만 8000원 넘는 돈을 써야 하는 셈이었다. 8000원이면 구내식당 점심값에 맞먹는 금액이다.


지난가을 제철 과일은 폭염 폭우 가뭄 홍수 등 온갖 기후 풍파에 시달린 데다 탄저병까지 유행하며 흉작을 피하지 못했다. 작황 부진으로 급상승한 과일 가격은 겨울철에도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aT에 따르면 설 연휴 직전인 지난 8일 기준 단감 10개 가격은 2만1390원이었다. 개당 2140원꼴이다. 연초부터 급상승하던 감귤 가격은 지난 6일 처음으로 개당 600원을 넘어섰고(10개 6053원), 지난 7일 10개 6058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8일엔 그보다는 다소 떨어져 감귤 10개 가격이 전국 평균 5879원에 판매됐으나 1년 전(3503원)과 비교해 67.8% 급등한 가격을 보였다.

사과와 배 가격은 출하가 본격 시작되던 지난해 가을보다는 상승세가 주춤하다. 한 때 사과와 배 모두 개당 5000원을 넘어서며 1년 전 대비 2배 가까운 가격 급등세가 나타났으나 지난 8일 기준 사과는 개당 2524원, 배는 개당 3174원의 가격대를 보였다.

사과는 1년 전보다 약 10%, 배는 3%대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맛 품질 대비 높은 가격이라는 공감대가 소비자 사이에서 몇 개월에 걸쳐 형성된 측면이 있다”며 “수요가 감소했기 때문에 가격도 내려간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과일가격 급등세는 물가 상승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에서 ‘과실’의 물가 기여도는 0.4% 포인트로 나타났다. 이는 1월 물가상승률 2.8%) 가운데 과일만으로 전체 인플레이션의 7분의 1을 끌어올렸다는 걸 의미한다. 이 수치는 2011년 1월 이후 13년 만에 최대치다.

지난달 물가 지표에서 사과와 배는 지난해 1월보다 각각 56.8%, 41.2% 올랐다. 약 1.5배 이상의 가격 상승을 기록했다는 뜻이다. 이달의 물가 지표에서는 감귤과 단감의 급등세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전망치가 밝지 않다는 데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과일 가격이 안정세를 찾을 요인이 당분간 거의 없다고 본다. 여름과일이 본격 출하되기까지 저장과일에 의존해야 하는데, 사과 배 단감 등의 저장과일 물량도 전년 대비 30%가량 줄었다. 딸기 작황은 전년 대비 부진해서 올 여름 제철과일 출하가 시작되기 전까지 공급 측면에서는 가격 인하 요인이 없다는 분석이 대세다.

다만 수요 하락에 따른 가격 안정 가능성은 열려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사과 가격이 개당 5000원일 때가 있었다. 이 때 충격이 워낙 커서 소비자들이 사과를 안 사는 상황에 이르며 수요가 줄었고 가격이 내려갔다”며 “다른 과일도 그런 흐름을 이어갈 수 있겠으나 평년 수준으로 떨어질 거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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