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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가리비’를 아시나요?

경남 고성 가리비 수확·가공 현장 르포
따개비 제거에 어민들 고민 커져
이마트, 가격 낮춘 ‘못난이 가리비’ 선보여

경남 고성군 효성푸드 가리비 가공공장에서 따개비가 잔뜩 붙은 가리비를 들고 있다. 김성훈 기자

경남 고성군 앞바다. 가리비가 가득 담긴 그물 줄이 크레인에 딸려 올라오자 가리비들은 반갑다는 듯 입을 열어 “딱, 딱, 딱” 소리를 냈다. ‘헤엄치는 조개’ 가리비는 패각을 여닫는 근육인 관자가 큼직하게 발달해 고급 식재료로 꼽힌다.

지난 14일 전국 가리비 생산량의 3분의 2를 책임지는 고성 앞바다에선 수확이 한창이었다. 어민들은 가리비 양식장에 떠 있는 부표를 보고 수확 시기를 판단한다. 가리비가 크게 자라면 부표가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가라앉기 때문이다.

가리비 수확은 보통 9월 말부터 다음 해 5월까지 이뤄지지만 올해는 이상고온과 예측 불가능한 해류로 작황이 좋지 않다고 한다. 가리비 가공공장을 운영하는 정해문 효성식품 대표는 내년 3월쯤이면 조업이 모두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매년 국립수산과학원에서 굴 씨앗 방사 시기를 알려줍니다. 알이 해류를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알이 줄에 잘 붙을 수 있는 시기에 뿌려줘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올해는 굴이 엉뚱하게 가리비에 많이 붙었어요. 그렇다 보니 가리비에 갈 영양분을 함께 붙은 굴이 흡수해서 가리비가 자라지 못했어요.”

가리비가 담긴 양식망이 크레인에 들려 올라오고 있다. 김성훈 기자

고수온에 따개비도 많아져…제거작업 줄이고, 가격은 낮추고

가리비는 바닷속에서 밧줄에 고정해 키우다 보니 껍질에 다른 생물들이 붙게 마련이다. 올여름 해수 온도가 최고 29도까지 치솟으면서 가리비에 붙는 따개비의 양도 훨씬 많아졌다고 한다.

가리비는 흔히 찜이나 구이로 가열해 먹기 때문에 따개비가 붙어있어도 먹는 데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울퉁불퉁한 모습이 보기 좋지 않아 따개비를 제거해 판매된다. 따개비를 없애는 과정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인건비도 많이 든다. 올해는 고물가로 유류비와 물류비용도 늘어 어민들의 부담이 커졌다.

이마트 수산매입팀 문부성 바이어는 추운 작업장에서 따개비를 떼어내는 고령의 할머니들을 보면서 ‘못난이 가리비’ 상품을 구상했다. 신선도, 영양, 맛 등 품질에는 전혀 이상이 없으나 미관상 상품성이 떨어지는 식재료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전략이다. 따개비 제거 작업을 간소화해 상품 생산 시간은 절반으로 줄였고, 가격도 30% 이상 낮췄다.

“가리비는 굴과 달리 해를 넘기면 모두 죽어버립니다. 잡물을 떼어내려다 상품화 시기를 놓치면 냉동하거나 폐기처분하는데, 제때 팔지 못하면 1년 농사를 망치게 되는 셈이죠. ‘못난이 가리비’가 나오면서 어민들은 판로가 확보되고,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에 가리비를 먹을 수 있게 됐습니다.”

가리비 가공공장에서 어민들이 불순물과 이물질을 선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김성훈 기자

“알가리비 잘 팔릴 것” 예상 적중…위생 걱정 끝

가리비의 변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고성·통영 일대는 전국 최대 굴 산지이기도 하다. 석화에서 굴을 분리해 포장하고 상품화하는 노하우가 쌓여있는 곳이다. 이마트와 어민들은 가리비살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렇게 탄생한 ‘홍가리비 관자살’은 껍질 버리기를 불편해 했던 젊은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특히 라면과 미역국에 한봉지 넣으면 국물이 몰라보게 달라진다.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바지락살 가격이 비싸진 점도 가리비살 매출 증가에 도움을 줬다.

무겁고 틈새를 찾기 어려운 굴보다 가리비는 껍질 까는 작업이 수월한 편이지만 가리비는 관자가 손상되지 않게 분리해내는 작업이 까다롭다. 가리비 속으로 칼을 밀어 넣은 뒤 위쪽과 아래쪽 껍질을 모두 긁어 관자를 잘라내야 속살이 분리된다. 이렇게 발라낸 가리비살은 굴보다 가격이 약 40% 정도 더 비싸다.

가리비를 가공하는 공장 내부로 들어서면 흡사 반도체 생산라인과 같은 모습이 펼쳐진다. 위생모와 가운을 입고 에어샤워실로 들어서면 강한 바람으로 작은 먼지까지 모두 털어낸다. 손과 장화를 소독하는 과정도 필수적이다. 오염물질이 유입되지 않도록 외부공간과 철저히 분리했다.

가리비살은 수조와 컨베이어를 수차례 오가며 거품 목욕을 한다. 두 차례 불순물과 이물질을 제거하는 선별작업도 거친다. 최종 선별된 가리비살은 자동포장 기계로 향해 한 봉지에 150g이 담긴다. 기계의 최대 장점은 사람의 손이 가리비에 닿지 않아 신선한 상태로 밥상에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포장이 완료된 가리비살은 수확 당일 자정까지 물류센터로 옮겨지고, 다음날 오전 전국 이마트 매장에 진열된다.

문부성 이마트 수산매입팀 바이어가 포장된 ‘못난이 가리비’와 ‘홍가리비 관자살’ 상품을 들고 있다. 이마트 제공

“방사능 걱정했지만 더 잘 팔려…불황이 더 무서워”

이마트는 가리비와 굴을 소비자가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후 방사능에 대한 관심이 커진 만큼 국립수산과학원과 협업해 방사능 안전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30여년 어업에 종사한 양모(50)씨는 방사능보다 불황이 더 무섭다고 토로했다. “오염수 이슈가 발생했을 때 업종 전환을 고민할 정도로 큰일이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작년보다 매출이 늘었습니다. 품질 관리가 까다로운 대형마트는 신뢰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어민들은 방사능보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경기 불황이 더 무섭습니다. 삼겹살은 비싸도 사 먹지만 수산물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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