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전체기사

새벽·휴일근무 거부하자 잘린 워킹맘…대법 “부당 해고”

대법 “직원의 ‘일·가정 양립’ 배려는 기업 의무” 첫 판단


어린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에게 회사가 새벽·휴일 근무를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자 채용 불가 통보를 한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사업주에게 소속 근로자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첫 법원 판결이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도로 관리용역업체 A사가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구제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 상고심에서 A사 손을 들어준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0일 밝혔다.

워킹맘 B씨는 2008년부터 고속도로 영업소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서무주임으로 근무하며 어린 두 아이를 키웠다. B씨가 원래 근무했던 용역업체는 출산과 양육 상황을 배려해 매달 3~5차례 정도 B씨의 오전 6시~오후 3시 초번 근무를 면제해줬다. 주휴일과 근로자의 날만 휴일로 인정했지만 B씨 같은 일근제 근로자들은 공휴일에 연차 휴가를 사용해 쉴 수 있었다.

그런데 2017년 4월 고용 승계 조건으로 새 용역업체인 A사가 들어오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A사는 기존 직원들과 수습 기간 3개월을 둔 새 근로계약을 체결하면서 B씨에게 초번 및 공휴일 근무를 지시했다. B씨는 “오랜 근무 형태를 하루아침에 변경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B씨는 회사 방침에 불복해 초번·공휴일 근무를 하지 않았다. A사는 3개월 후 무단결근 등 근태를 문제 삼아 채용 거부 의사를 통보했다.

B씨는 “A사의 채용 거부 통보는 부당해고와 다를 바 없다”며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냈고, 중앙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가 맞는다”고 판정했다. A사는 불복해 소송전을 벌였고 1심은 B씨 손을, 2심은 A사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회사의 채용거부 통보가 부당하다며 다시 B씨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B씨가 육아기 근로자라는 사정만으로 초번·공휴일 근무 자체를 거부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A사가 육아기 근로자의 일·가정 양립을 위한 배려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볼 여지가 상당해 채용 거부 통보의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사업주가 육아기 근로자의 육아를 지원하기 위해 근로 시간 조정 등 조치를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은 “A사는 B씨가 육아기 근로자로서 자녀를 보육시설에 등원시켜야 하며, 초번 근무 시간에 일할 경우 양육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사정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년간 지속해 온 근무 형태를 갑작스럽게 바꿔 보육시설이 운영되지 않는 공휴일에 매번 출근하라고 요구하는 건 자녀 양육에는 큰 저해가 되지만, 경영상 필요성이 큰 지시로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업주에게 소속 근로자의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배려 의무가 인정된다는 것을 최초로 명시적으로 인정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