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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전쟁터에서 죽자’… 러시아 죄수들 끔찍한 현실

수감 대신 전장 선택한 러 범죄자들
사면 조건으로 6개월 용병 계약 맺어
자유·돈·명예 획득할 유일한 기회

러시아 민간 용병기업 바그너 룹의 부대원들이 지난 6월 24일(현지시간) 로스토프나노두에서 떠나기 위해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마약 판매 혐의로 러시아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건설 노동자 니콜라이는 지난해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에 합류했다. 사지로 내몰리는 줄 뻔히 알면서도 총자루를 쥔 이유는 가족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죽으면 가족에게 보상금 5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 돈이면 가족이 집을 구할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죽으면 죄수가 아니라 전쟁에서 죽은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셋 중 하나는 살인마… ‘신분 세탁’ 꿈꾸는 이들

지난해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니콜라이를 비롯한 수많은 러시아 죄수들이 전장으로 향하고 있다. NYT는 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용병으로 동원된 ‘IK6’ 교도소 죄수 197명의 신원을 추적한 결과를 인용해 이들 중 최소 4분의 1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생사를 확인한 172명 중 140명이 살아 돌아온 것으로 파악됐으나 이들 대부분은 중상을 입었다. 죄수들은 6개월간 복무하면 사면해준다는 계약을 맺고 전장으로 향했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22세이며 대부분 가난한 시골 마을 출신이다. 평균 형기는 5년 정도다. IK6 교도소에는 살인, 폭력, 마약 등 중범죄자들이 주로 수용된다. 이곳 출신 용병 셋 중 하나는 살인죄로 복역하다 군인이 됐다.

남은 형기가 긴 수감자들에게 바그너그룹과의 계약은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지다.

살아남기만 한다면 과거를 청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참전용사로서 존경받는 새 삶을 살 수 있다. ‘볼크’라는 군 호출명을 가진 남성은 술을 마시다 2명을 살해한 혐의로 복역하다 바그너그룹의 용병이 됐다.

이 남성은 살아 돌아와 현재 용접공으로 일하며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 중이다. 그는 “내가 저지른 죄의 책임을 (전쟁에 나서는 것으로) 졌다”고 말했다.

바그너그룹은 개전 이후 죄수 5만명이 용병으로 동원됐고 현재까지 1만여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죄수 용병 대다수가 바흐무트나 자포리자 등 최전선에 투입됐기 때문에 실제 사망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가능성이 크다. NYT는 “러시아 수감자 출신 대부분은 우크라이나에서 ‘대포 사료’로 사용됐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죄수 용병들 사이에선 본인에게 기회를 줬다는 이유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감사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전장에 투입됐던 죄수 용병 안드레이는 “보바(푸틴의 어릴 적 애칭) 삼촌이 나와 내 형제들을 용서했다. 그는 우리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국가근위대 소속 특수부대인 '오메가그룹' 대원들이 지난달 8일(현지시간) 도네츠크 아브디브카 마을에서 공격하는 러시아군을 향해 박격포로 반격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 구치소서도 끌어다 써… 용병 규모 확대

러시아 육군은 바그너그룹이 맡았던 죄수 용병 모집 사업을 지난 2월 인수했다. 최근에는 교도소를 넘어 재판 전 피의자들이 수용되는 구치소와 이민자 구금 시설에서도 모집하고 있다. 러시아 재판부의 유죄 판결률이 99.6%에 달한다는 점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내에서도 푸틴 대통령이 국가의 형사 사법 시스템 전체를 병력 동원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지 인권운동가 야나 겔멜은 “죄수 용병 사업은 푸틴 대통령의 전쟁을 위한 ‘인간 컨베이어’”라고 규탄했다.

모스크바의 교도소 관리로 근무하다 전쟁에 항의하며 망명한 안나 카레니코바는 “러시아 정부는 남은 죄수를 입대로 유인하려고 수용 환경을 일부러 열악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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