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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투자손실 물어내란 꼴”… ‘ELS 책임론’에 은행권 분통

홍콩H지수 ELS 대규모 손실 우려에
금융당국 필두로 ‘은행 불완전판매’ 비판
은행권 “위험성 알려주고 계약했다” 항변


홍콩 H지수 주가연계지수(ELS) 상품에서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는 것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이 ‘은행 책임론’을 펴들자 은행권에서 반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객 의사에 따라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적법하게 계약을 맺었음에도 막상 손실이 나자 은행이 덤터기를 쓰고 있다는 불만이다. 은행원들 사이에서는 “‘우량주 삼성전자’에 투자했는데 왜 손실이 났냐고 따지는 꼴 아니냐”는 얘기마저 나온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금융당국은 내년부터 대규모 원금 손실이 우려되는 홍콩 H지수 ELS 상품들과 관련해 은행들이 이를 금융취약계층에게까지 무리하게 판매한 게 아닌지 들여다보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29일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들과 간담회를 가진 후 기자들과 만나 “은행들이 고위험 상품을 고령자에게까지 무리하게 판매한 게 적절했는지 의문”이라며 “고위험·고난도 상품이, 다른 곳도 아닌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들에게 특정 시기에 몰려 판매됐다는 것만으로 금융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상 ‘적합성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상품을, 금융 지식이 떨어지는 고객들에게까지 무리하게 판매해 은행이 이익을 챙긴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문제가 된 ELS 상품들은 ‘홍콩 H지수’라는 지표에 비례해 수익을 낸다. 지수가 오르면 수익이 나지만 지수가 떨어지면 원금도 못 건질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홍콩 H지수가 고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하며 불거지기 시작했다. 국내 5대 시중은행에서 판매한 ELS를 보면 당장 다음해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상품 규모만 8조4100억원에 달한다. 하반기까지 합치면 내년에 12조원이 넘는 ELS 만기가 돌아오는데, 그때까지 지수가 회복되지 않으면 그대로 손실이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날 오후 1시 기준 홍콩 H지수는 5797.73으로, 1만2000을 넘어섰던 2021년과 비교하면 반 토막도 되지 않는다.

다만 은행원들 사이에서는 “수익이 날 땐 입을 닫고 있다가 손실이 나니 이제 와서 책임을 돌린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아무리 급격한 주가 폭락사태를 예상하지 못하더라도, ELS같은 상품이 고위험 상품이라는 걸 모르고 계약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며 “최근 문제가 되는 ‘80대 노인 상대 판매’같은 사례가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은 위험성을 인지하면서도 ‘설마 손실이 나겠어’라는 마음으로 ELS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예금자보호 등 원금보장이 되지 않는 금융상품에 대한 손실 가능성은 상식 범주에 속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이 관계자는 “ELS 손실에 대해 은행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마치 ‘삼성전자가 우량기업이라 그래서 주식을 샀는데 왜 투자손실이 났느냐’며 증권사에 따지는 것과 같다”고 했다.

실제 은행들은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입법이 예고된 2020년부터 상품 판매 과정에서 동의 여부를 녹취하고 필수 설명 내용 등을 전부 읽어주는 등 조치를 취했다. 은행 입장에서는 모든 위험성을 알려주고 당사자 동의까지 받은 계약인 셈이다.

반면 이 원장은 “은행들이 고객이 묻기도 전에 판매해 놓고 자필 서명, 녹취 등을 운운하며 피해 예방 조치를 했다고 하는 것은 자기 면피”라며 “고객이 서명하고, ‘네, 네’라는 답변을 했다고 해서 (불완전 판매의) 책임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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