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세상] 자해하는 청소년

부정적, 긍정적인 감정이든 회피하지 않도록 가르치자


여중생 Y는 자주 손목에 상처를 내며 자해를 한다. 깊이 상처를 내는 건 아니지만 피가 날 정도로 손톱으로 심하게 할퀴거나 샤프로 긁는다. 왜 그랬냐고 물으면 모르겠다며 그냥 ‘답답해서’라고만 말했다. 부모도 도와줄 방법을 찾지 못했다. Y가 공부에 스트레스받고 학원도 많으니 학원을 줄이는 등 노력을 해보았으나 소용이 없다. 가족 환경에도 두드러지는 문제가 없고 평범한 가정이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Y 역시 ‘모르겠어요. 아무튼 죽으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몸에 상처를 내고 나면 답답했던 게 시원해지고 후련하다는 느낌이 있어요. 한번 그러고 나니 답답할 때마다 그렇게 하고 싶어져요’라고 말했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5세 이전의 아이들은 감정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다. 무섭거나, 두렵거나, 화가 난다고 느낄 때 그냥 그렇게 느낀다. 자신의 느낌을 좋거나 나쁜 것으로 가르지 않는다. 하지만 5~10세가 되면 부모님, 선생님, 또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차츰 ‘평가’라는 모드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외로운 감정이 들면 이에 대해서는 ‘나쁜 감정’이라고 평가하기 시작한다.

부모가 ‘그런 생각 하면 못써’ ‘그런 생각은 안 좋은 거니까 하지 말자’라는 식으로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지만 엄마가 ‘오, 슬프구나. 엄마가 간식 만들어 줄게. 먹고 기분 풀자’라고 말하며 슬픔에서 도피하라고 가르친다. 아빠가 ‘착한 아이는 화를 내지 않아’라고 말하면 아동은 ‘화를 느끼나 화를 내면 나쁜 사람’이라고 학습한다. 아이는 은연중에 부정적인 감정을 어떤 식으로든 억압해서 느끼지 않거나 회피하는 게 좋다는 것으로 배운다. 감정을 느끼는 걸 두려워하게 된다.

청소년기가 되면 ‘발표할 때 불안해하면 내가 약한 거야’ ‘슬프다는 건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거야’라며 감정에 대해서도, 그러는 자신에 대해서도 평가하기 시작한다. 또 청소년기 특성상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동시에 들 수 있어 부모에게 의지하고 사랑하면서도 화가 나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 등 감정이 복잡해진다. 견디기가 더 힘들며 마땅히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하고 ‘답답하다’고만 한다.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어떻게든 이를 없애고, 느끼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학습된 청소년들이 감정을 해결할 방법으로 인터넷,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된 ‘자해’를 실행해 본다. 일시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해소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런 일시적인 착각은 상당한 유인 효과가 있다. 마약을 먹으면 나쁘다는 걸 알지만 순간의 쾌락을 통해 진짜 감정을 일시적으로 회피할 수 있기 때문에 마약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많은 부적응적인 행동의 핵심에는 ‘감정 회피’가 있다. 자해나 마약뿐 아니고 또래를 괴롭히는 행동, 게임 중독, 폭식 등도 마찬가지다.

부모나 교사는 아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부정적이든 긍정적인 감정이든 인정하고, 회피하지 않도록 가르치자. 아이가 느끼는 모든 느낌은 정상이며, 느낌을 통제하거나, 없애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유용하지도 않음을 알게 하자. 위로하거나 해소해서 없어지지 않음을 부모도 알아야 한다. ‘답답하다’는 내적 경험을 분노, 불안, 초조, 슬픔 등의 이름으로 명명하도록 해보자. 이런 감정은 힘들지만 바닷속의 해초가 파도에 따라 움직이듯, 감정을 받아들이도록 하자. 감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이므로 지나가기 마련이다. 알아차리고 명명하고 도망하지 말고 관찰하도록 도와준다. 파도에 따라 움직이는 걸 억지로 멈추게 하려고 막대기처럼 꼿꼿이 있으려고 파도와 싸우면 막대기는 곧 부러진다. 마치 순간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려고 자해 시도를 하는 것처럼. 대신 어떤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지 도와주자.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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