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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요양병원장, 두달새 결핵 노인 2명 살해 의혹…직원 녹취 파일엔?

염화칼륨 건넨 직원 A씨 “병원장이 사람 죽였다” 언급
경찰, 8년 만에 수사…살해 고의성 등 혐의 입증 주력

의료행위 과정에서 환자 2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요양병원 원장 이모(45)씨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마치고 지난 14일 서울서부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9월과 11월,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남녀 노인 환자 2명이 연이어 사망했다. 병원은 이들의 사인을 ‘지병으로 인한 자연사’라고 유족에게 알렸다. 병원의 말을 믿은 유족들은 부검은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8년 뒤, 당시 병원 원장 이모(45)씨가 고위험 의약품인 염화칼륨(KCl)을 ‘결핵에 걸린’ 환자들에게 투입해 숨지게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찰은 이 원장에 대해 환자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직접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상태다. 대체 8년 전 그 병원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일 경찰과 국민일보 취재 등을 종합하면 이 원장은 지난 2015년 9월쯤 행정직원 A씨로부터 염화칼륨을 건네받았다고 한다. 이 원장은 주변 의료진에게 ‘잠시 나가 있으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30여분 만에 60대 남성 환자가 숨졌다. 이 원장은 두달여 뒤인 같은해 11월에도 80대 여성에게 똑같은 일을 벌였다고 한다. 그 역시 30여분 만에 숨졌다. 이들은 2급 전염병인 결핵에 걸린 상태였으나 병원 측은 유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사인을 지병으로 인한 자연사라고 통보했다. 병원의 설명을 그대로 믿은 유족들은 부검 없이 장례를 치렀다.

하지만 최근 수사를 한 경찰은 이 원장이 통상적인 의료 행위를 한 게 아니라 노인들에게 염화칼륨을 주입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경찰은 A씨가 염화칼륨을 건네기 전 이 원장과 범행에 대해 나눴던 대화의 녹취록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리한 병원 확장 이전으로 수십억대 빚더미에 시달리던 이 원장이 결핵 환자 발생으로 병원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이다.

병원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 원장은 그해 초 병원을 확장 이전했다. 그러나 개원 초기 병상 수를 채우지 못하면서 18억이 넘는 빚에 시달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가 한국을 강타했다. 정부는 전염병 발생 시 의료진과 병동 전체를 격리하는 ‘코호트 격리’를 신설했는데, 그때 병원에서 결핵 환자가 발생했다. 2급 전염병인 결핵 환자 발생 사실을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신고하면, 요양병원의 특성상 병원은 코호트 격리 전 비감염 고령 환자 대다수를 상급병원 등으로 이전해야 했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사건 발생 8년 만에 첩보를 입수, 내부자 진술 등 수사를 진행했다. 이 원장에게 염화칼륨을 건넨 행정직원 A씨가 추후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원장이) 염화칼륨을 달라고 해서 주기만 했지 나는 (병원장이 투여할지) 정말 몰랐다”는 취지의 말을 주변에 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염화칼륨은 일반적으로 수액에 희석해서 투여한다. 심한 저칼륨혈증으로 생명이 위급할 때는 치료 용도로 천천히 정맥주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급히 주사하면 환자가 사망할 위험도 있다. 해외에서 사형수의 심장 정지제로 사용하는 약물 중 하나라 ‘현대판 사약’으로 불리기도 한다.

경찰은 해당 병원을 압수 수색을 하면서 당시 환자의 사망 시기와 염화칼륨 투여 시점 등을 특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 원장이 단순 의료행위나 과실이 아니라 고의로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고 지난 10일 살인혐의로 이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당시 그의 범행을 도운 것으로 보이는 병원 행정직원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법원은 피해자들의 직접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행위 자체에 대한 직접증거가 부족해 범죄 성립 여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원장의 약물 투여 장면을 본 목격자나 CCTV가 없는 상황에서 부검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이 사건을 ‘사체 없는 살인사건’과 유사한 건으로 보고 있다. 향후 이 원장의 혐의 입증은 증거력 싸움에 달려있다는 진단이다. 경찰은 이 원장의 살인 혐의를 입증해줄 녹취록 등을 다수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이 녹취록에 담긴 내용이 증거능력을 인정받느냐가 이 원장의 유무죄를 가를 스모킹 건이 될 것으로 본다.

‘시체 없는 살인 사건’으로 불렸던 고유정 사건을 담당했던 이정도 변호사(법무법인 백양)는 “정황 진술만으로는 살인 혐의 입증이 쉽지 않다”면서도 “염화칼륨을 건넸다는 A씨가 범행에 대해 자백한 녹취록이 있다면 이번 사건의 ‘스모킹 건’이 될 수 있다. 내용이 구체적인 데다가 실제로 A씨 발언을 들은 사람도 ‘내용이 맞다’고 교차검증이 이뤄지면 법원도 핵심 증거로서 가치가 있다고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 출신 정이원 변호사(법률사무소 이원)는 “환자가 염화칼륨에 의해 사망했는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니 원장은 염화칼륨을 받았더라도 ‘살인을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며 “염화칼륨이 흔히 수액에 쓰이기도 하지만, 필요 없는 상황에서 뜬금없이 썼다면 살해 의도를 의심해볼 만하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직접 증거에 준하는 명확한 증거들이 있다. 주변 사람들이 병원장의 행위 상황에 대한 묘사가 정확하게 일치한다”며 불구속 수사 중 혐의 입증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이 원장의 법률대리인은 이날 국민일보 통화에서 “수사기관에서 수사중이라 밝힐 수 있는 게 없다”며 “의뢰인은 여론의 판단이 아닌 법원의 판단을 받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김용현 김재환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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