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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탈시설’ 아닌 ‘당사자 중심’ 장애인 주거 정책 마련해야

최근 우리나라 사회복지계, 특히 장애인복지계에서 가장 큰 이슈는 장애인의 탈시설화이다. 최근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마치 장애인 거주시설이 학대와 차별 등 인권 사각지대처럼 폄하되고 시설폐쇄까지 거론되면서 뜨거운 논쟁에 빠져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2008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한 나라로서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의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할 책무가 있으나 어떤 장애인 주거개혁의 로드맵을 찾아야 하는지가 현실적인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나라 장애인 거주시설은 1981년 유엔이 정한 세계장애인의 해에 장애인복지법을 제정하면서 종래의 아동시설과 부랑인시설에서 새로이 출발하게 된 것이다. 장애인 거주시설의 입소도 요보호 대상 장애인을 우선으로 한 결과 현재 거주시설 1500개 내 무연고자는 절반이 넘는다. 또한, 장애 유형이나 정도 등을 볼 때도 지적‧자폐성 장애 등 발달장애와 중증‧중복장애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시설에서 지역사회로의 장소 전환만으로 자립 생활이나 사회통합이 이루어질지 우려와 염려, 부정적 견해가 크다.

더구나 현재 우리나라 탈시설 시범사업으로 시행하고 있는 모델은 시설과 다름없는 지원주택과 활동지원사를 배치해 주는 것으로 신체장애나 뇌성마비 등에는 실효성이 있지만, 발달장애나 중증‧중복장애인에게는 돌봄 중심의 시혜적 복지로 일관되어 있다. 정부 보조금 지원 카르텔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고비용, 저효율 모델인 것은 물론 지속 가능하지 못할 것으로 이미 재활복지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80년대 초부터 시설장애인만이 아니라 재가장애인의 주거모형을 개발‧시행하고 있다. 중증신체장애인은 1인 1실, 8평의 자립 생활센터가 동네마다 있어 여기서 주거 및 활동 서비스를 지원받으며 학교나 직장에 다니고 있고, 자기 결정권이 보장된 자립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지적‧자폐성 장애, 뇌전증 등 발달장애인의 경우 ‘위탁양육가정’(foster home) 제도와 ‘지원 고용’을 통한 납세의 의무를 다하는 국민으로 소득보장, 자립 및 사회통합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265만 명의 등록 장애인 중 시설장애인은 약 1.1%인 2.8만 명에 불과하고 절대다수인 98.9%인 237만 명이 재가장애인이다. 장애인 중의 65세 이상 장애 노인이 무려 52%인 140만 명이다. 노인주거는 요양병원, 요양시설, 실버타운 등 노인의 건강 상태나 치매 여부, 재활복지 욕구에 따라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재가장애인은 전문적 서비스를 선택해서 입소할 수 있는 주거시설이 없고 자립 생활센터 등 주거모형도 없다.

때문에 ‘탈시설’이 목표가 아닌 개별 장애인의 당사자 중심, 즉 ‘생명 중심’의 주거복지 모형을 통해 장애인의 자립 생활과 일자리를 개발하고 소득보장과 사회통합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더불어 사는 시민들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아울러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장애인 정책 로드맵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숙제다.

원래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의 제정 취지는 세계 장애인 누구나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받지 않도록 하며, 의사소통‧양육‧교육‧노동‧재활‧가활, 지역사회통합 등에 있어서 ‘정당한 편의 제공’(Reasonable Accommodation)을 통해 장애인의 다름의 능력을 개발하며 인권적인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즉, 전장연이 탈시설을 주장하는 근거로 내세우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무조건적 시설 폐쇄가 아닌 선택권과 인권보장을 의미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종인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 원장
나사렛대학교 휴먼재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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