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데이터센터 마비 사태로 IT 선진국을 표방하던 대한민국이 한순간에 조롱거리가 됐다. 우선 이번 사태는 후진국적인 사고의 전형이었다. 전 국민의 90%가 사용하는 메신저 서비스의 데이터 관리, 위기 대응 대비 체계, 실제 위기 대응 등에 있어서 이토록 후진국적인 행태를 보였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다. 정보통신 업계 종사자 중 이번 사태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명의 사용자를 가진 인터넷 서비스 중 카카오만이 평소에 보여줬던 묘한 양태가 있었다. 바로 메시지 스트림이 끊어지는 현상과 어색한 백업 기능이다. 정상적인 데이터 센터와 데이터 동기화, 데이터 검색이 IT 산업의 일상적 수준의 기술력을 유지했다면 당연히 백업 기능이 순조롭게 이뤄졌을 것이다.
그러나 카카오의 경우는 전화기를 바꾸면 새로 연결된 전화기와 기존 데이터가 자동 복구되지 않는다.사용자가 별도 백업을 하고 복구 작업을 하지 않으면 기존 자료를 사용할 길이 없다. 데이터 관리와 처리 기능 자체가 아주 후진적이었다는 뜻이다.
또 카카오는 데이터가 끊기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이동할 때나 미국에서 한국으로 이동할 때 갑자기 메시지가 연결되지 않고 톱날 형태의 단절 이미지가 나타났다. 리저널 데이터 센터가 없거나 데이터 센터 사이에 백본 네트워크를 통한 동기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기술적인 관점에서 글로벌 리저널 데이터 센터 체계가 없고 동기화 처리가 낮은 수준이었다는 말이다. 이는 보안과 기술에 투자하지 않고 기술자의 인적 작업에 의존하는 후진적인 체계였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중요한 대화를 나눌 때 절대로 카톡을 사용하지 않는다. 사업이나 공적인 대화는 슬랙처럼 훨씬 더 안정적인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한다.
기술적 문제와 별도로 국가 안보, 경제정의 면에서 또 다른 문제가 부상하고 있다.전 국민의 90%가 사용하는 메신저 서비스를 국가기간 통신망으로 보고 국가가 개입해야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또한, 카카오를 독점 기업으로 간주하여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통해 독점 기업을 분리 해체하거나 별도의 규제 및 감독 체계를 적용해야 한다는 논의도 촉발되었다. 논란 중에는 카카오가 절대 독점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중요한 배경에 대한 지적도 들린다. 국가기관의 대국민 서비스를 카카오에 몰아준 것이 독점 지위 확보를 도왔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독점의 폐해를 지적하고 국가 안보와 관련된 문제를 언급했다. 국가가 추가적인 규제와 감독으로 접근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이렇게 국가가 개입하게 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자유 시장 경제에 대한 통제가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다.
쟁점은 독점 해체, 시장 경제 규제 최소화, 국가 안보에 준하는 보안과 안정성 확보이다. 카카오라는 한 기업이 초래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고치게 되면 필연적으로 전체 시장에 필요 이상의 규제가 확대될 것이다.최소한의 규제로 접근해야 할 요구가 높아지는 것이다.
동시에 국가 기간 통신망 수준의 엄격한 관리도 요구해야 한다. 더 나아가 더 이상 독점 상황이 악화되지 않고 오히려 독점 체제가 완화되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의 사례 연구를 통해 배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주요 산업체계를 종종 군산합일체라고 부른다. 방위 산업이 미국 경제와 정치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강조하면서 특정 방위산업체가 미국 국가 전반에 지나친 영향을 행사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국가, 산업 체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발생하는 오해다.
미국은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국가 산업체제를 전시 체제로 전환한 경험이 있다. 유럽의 경제·정치적 주도권이 미국으로 옮겨 가게 된 배경을 꼽을 때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전시체제로 전환된 미국 산업계가 급격한 규모 팽창을 이룬 것을 빼놓을 수 없다.
모든 산업계가 전시체제로 전환되어 거대한 규모의 전쟁 자원을 생산하던 체계가 계속 규모를 유지하면서 미국은 전후 세계 경제를 견인할 만큼 거대한 산업 체계를 이뤘다. 그렇기에 미국에서 마치 소수의 방위사업체와 군부의 연결을 문제 삼는 것은 근시안적 견해다. 미국은 민간 산업 체계가 상시적으로, 더 나아가 비상시에 단기간에 전시체계로 전환될 수 있는 구조와 체질을 가지고 있다.
전시체제에서 시작한 현대 미국 산업 체계와 함께 미국식 민주주의의 독특한 국가관을 빼놓고 방위 산업과 국가의 관계를 이해할 수 없다.
미국은 민간 영역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최소화한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기 위해서 국가의 역활이 최소한으로 유지되야 한다는 원칙이 민주공화주의의 근본이라고 믿는 사상이 미국 민주주의의 초석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연방 정부와 주 정부의 정책을두고 벌어지는 정치 토론은 정책의 효율성과 당위성에 대한 토론에 앞서 국가가 얼마나 민간 영역에 관여할 수 있느냐는 가장 미국적인 논제를 중심에 두고 벌어진다. 그 결과 국가의 민간 영역 개입이 세계 어떤 나라에 비해서도 훨씬 더 소극적으로 이루어지는 나라가 미국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국가 기관은 자체 통신 시설과 운송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현실적으로 정부와 군부의 거의 모든 통신 서비스 시설은 민간 기업이 국가 조달 기관을 통해 납품하고 있다.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대규모 전쟁을 수행할 때 군수 자원을 수송하는 일의 대부분은 민간 항공사와 수송업자가 맡았다. 반면 한국은 국가가 직접 수직적 사업 확장을 통해서 직영하는 업무가 지나치게 많은 편이다.
미국에서 국가가 필요로 하는 통신 서비스를 살펴보자. 한국에서 각종 민원 서비스를 카톡을 통해 제공하듯 미국에서도 국가 기관의 통신 수요와 대민 서비스의대부분이 민간 업체를 통해 채워진다.
국가가 고객이 되어 민간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사용할 때는 실행하는 통상적 방식이 있다. 첫째, 민간 기업이 국가 업무를 수주하려면 정부가 요구하는 국가 안보와 군사 보안이 요구하는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둘째, 반드시 둘 이상의 경쟁사를 선택해서 시장의 활성화를 유지한다. 예를 들어 국방부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아마존이 수주하면 고객과 서비스 제공 업체 사이의 계약 조건에 따라 아마존은 군에서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보안 체계를 갖춰야 한다.
국방부가 아마존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선택했다면 치열한 경쟁 관계에 있는 아이비엠은 국무부의 서비스를 낙찰받는 식으로 시장의 균형을 이룬다. 새로운 법을 제정해 시장 전반에 걸친 규제를 하는 대신 고객과 사업자 간의 사업 계약을 통해서 국가 기간 통신망 수준의 보안과 안정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국가가 첨단 산업에 가장 까다로운 고객이 되어서 막대한 재정이 후원이나 지원으로 투여되는 대신에 각종 사용료와 서비스 비용으로 가장 경쟁력이 높은 민간 기업에 지급되기 때문에 국가 재정이 가장 효율적으로 경제와 시장 생산성 제고에 투여되며 동시에 국가 서비스가 항상 최상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다시는 카카오 사태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면서 산업을 위축시키지 않고 동시에 국가 기간 통신망 수준으로 민간 통신망의 수준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조달 정책을 활용하는 것이다. 개요는 이렇다. 카카오에서 제공하는 지자체와 중앙 정부 전반에 걸친 공공 서비스의 가이드라인을 조달청 차원에서 제정한다. 제공되는 모든 국가 서비스를 대통령실 차원의 태스크포스에서 재검토하고 백지에서 다시 배분한다. 그 과정에서 카카오뿐 아니라 라인 등의 경쟁사들과 무선통신 사업자 등을 대상으로 공개 입찰해 서비스를 배분한다.
국가 서비스에 입찰하려면 국가정보원이나 국방부에서 정한 국가 기간 통신망 수준의 보안과 안보 규격을 만족시켜야 한다. 사용자를 선점한 소수의 사업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하지 않도록 유무선 통신 사업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전화번호 데이터를 공유하게 하면 규모가 작은 기업이라고 해도 더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혁신이 가능할 것이다. 스타트업 기업도 기존 통신망과 데이터 센터를 임차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기업도 국가 표준 기준에 맞는 통신망과 데이터 센터를 사용할 경우 카카오 같은 대형 기업과 동일한 경쟁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계약은 3~5년 후 갱신하거나 재입찰하게 하면 된다.
이처럼 미국식 조달 업무를 통해서 시장에 경제 주체로 정부가 참여하면 시장 왜곡을 최소화할 수 있고 추가 규제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동시에 서비스 제공자에게 지불하는 사용료 형태로 시장에 공급되는 국가 자원이 가장 생산적인 형태로 민간에 투입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조달 업무를 통해 민간 통신 업계를 감독하고 지원하는 정책의 또 다른 탁월한 효율성으로 정책의 신속성을 들 수 있다. 조달 업무에 따른 시장 개입은 행정부 차원에서 대통령령으로 집행할 수 있을 것이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혼미한 정치적인 상황에서 행정부가 조달업무로 시장에 참여하는 방법은 신속한 정책 수행 능력만으로도 얼마든지 단기간에 지속가능한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장세규 목사=미국 버지니아 한몸교회 원로. 국제 NGO 연합회 자문역. 북한 인권운동 및 구호활동. 정신대 결의안 등 다양한 미국 입법 지원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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