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汎)롯데가 유제품 전문기업 푸르밀이 사업 종료와 전 직원 대상 정리해고를 통보한 가운데 대표이사 명의의 해고 통보 공고문이 온라인에 공개됐다. 이를 접한 많은 누리꾼은 “남의 일 같지 않다”며 안타까워했다.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18일 ‘푸르밀 사내 전 직원 해고통보 올라왔다’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블라인드는 회사 메일 등으로 해당 회사에 다니는 것을 인증해야만 가입이 가능한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다.
게시물엔 전날 대표이사 명의로 공지된 사업 종료 및 정리 해고 문건이 캡처된 이미지로 담겨 있다. 공고문은 “임직원 여러분께 사업 종료를 전하게 돼 매우 안타깝고 송구하다”로 시작해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4년 이상 매출 감소와 적자가 누적돼 내부 자구노력으로 회사 자산의 담보 제공 등 특단의 대책을 찾아봤지만, 현재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상황에 직면해 부득이하게 사업을 종료하게 됐다”는 설명이 담겼다.
이어 “당초 50일 전까지 해고 통보해야 하나 (근로기준법 제24조 3항) 불가피한 사정에 따라 정리 해고를 결정하게 됐다”고도 쓰여 있다. 공고문에 명기된 정리해고 대상은 일반직, 기능직 전 사원(푸르밀 전 임직원)이다. 현재 재직 중인 임직원은 370여명이다. 사업 종료 및 정리 해고일은 다음 달 30일이며 퇴직금은 14일 이내 지급할 예정이라고 명기돼 있다.
게시물을 접한 블라인드 이용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회사도 적잔데 무섭다” “공고문을 직접 보니 실감 난다” “푸르밀 범롯데가 대기업이 하루아침에 폐업이라니” “남 일 같지 않아 씁쓸하다” “푸르밀 형들 괜찮아?” 등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이처럼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쏟아지는 가운데 푸르밀 임직원이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게시물도 등장해 누리꾼의 안타까움을 샀다. ‘가나초코최애’라는 별명의 블라인드 이용자는 ‘지금까지 푸르밀 제품을 사랑해 주셨던 분들 감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올렸다. 글쓴이는 푸르밀이 자신의 첫 직장이라고 소개한 뒤 푸르밀 제품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글쓴이는 “어릴 때 마시던 검은콩 우유, 엄마가 마트 다녀오실 때마다 사오셨던 비피더스, 기분이 울적한 날마다 자신을 위로해줬던 가나초코우유”라며 제품에 대한 추억을 일일이 나열했다. 이어 “이런 건 누가 만드는 걸까 늘 궁금했었다. 소비자가 아닌 관리자로 나의 추억과 애정이 담긴 제품을 다룬다는 게 설렜기에 부푼 기대감을 안고 입사했다”고 회상했다.
글쓴이는 이어 “현실과 이상은 달랐다”며 “내가 상상했던 회사 모습이 아니었다”고 한탄했다. 그는 “잘나가던 제품도 몇 년째 매출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윗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졌고 직원들의 사기와 의욕도 점차 낮아졌다”며 “이리저리 치이고 버티다 결국 문 닫는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글쓴이는 “우리 회사가 사라진다는 소문이 언제 퍼졌는지 아쉬워하는 사람들, 대량 구매하는 사람들을 여기서 볼 수 있었다”며 “관리자로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때로는 날카로운 지적을 듣고 때로는 달콤한 칭찬을 들으며 희로애락을 느끼면서 일할 수 있었던 건 ‘그대들’ 덕분”이라고 했다.
이 게시물은 1100명이 넘는 이용자가 ‘좋아요’를 눌렀다. 댓글도 300개가 넘었다. 많은 누리꾼은 “애사심이 느껴진다” “가나초코우유 가장 애정하는 제품인데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니 슬프다” “그동안 만들고 지켜줘서 고맙다” “주인의식 있는 직원이 있는데 사라지다니 가슴 아프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한편 갑작스럽게 사업 종료 통보를 받은 푸르밀 노조는 “모든 적자 원인이 오너 경영 무능함에서 비롯됐지만 전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불법적인 해고를 진행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1978년 범롯데가 유제품 전문 기업으로 설립된 푸르밀은 2009년 남우식 대표이사를 필두로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면서 사명을 푸르밀로 바꿨다. 이후 국민대표 발효유 ‘비피더스’ ‘검은콩이 들어있는 우유’ ‘가나초코우유’ 등이 히트 상품으로 자리매김하며 한때 연 매출 3000억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8년 오너 경영 체제로 회귀해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넷째 동생인 신준호 회장과 그의 차남인 신동환 대표가 공동 취임하면서 실적이 뒷걸음질 쳤다. 적자를 면치 못한 푸르밀은 지난 5월 LG생활건강과 인수합병(M&A)이 추진됐지만 브랜드 가치에 대한 입장 차이가 커 최종 무산됐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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