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째 헛돌고 있는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논의가 윤석열정부 출범을 계기로 현실화될지 관심이 쏠린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정부의 디지털플랫폼정부 구현 과제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포함시키면서 제도 개선 기대가 커졌지만 갈 길은 멀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병원이 진료비 영수증 등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보험회사에 자동으로 제출하는 전산 시스템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는 보험 가입자가 직접 병원에서 4건 이상의 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내야 한다.
일부 보험사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간편 청구 방식을 홍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업계 1위인 삼성화재는 ‘쉽고 간편한 어플 실비 청구’를 안내하고 있지만, 실제 보험금 청구까지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우선 방문 청구와 마찬가지로 진단서, 진료비 영수증과 진료비 세부산정 내역서 등을 병원에서 직접 발급받아야 한다. 이들 서류를 일일이 뗀 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앱에 등록해야 한다. 무늬만 ‘간편한’ 서비스인 셈이다. 피보험자가 미성년 자녀일 경우엔 가족관계증명서도 발급받아야 한다. 배홍 금융소비자연맹 보험국장은 17일 “앱 청구는 겉으로 보기엔 디지털 간편 청구 방식을 도입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입자 불편을 전혀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보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기준 실손의료비를 전산 청구한 사례는 8608만건 중 20만1000건(0.2%)에 불과했다. 보험회사 홈페이지·앱(3416만8000건·39.7%)이 가장 많았고, 디지털 시대에 걸맞지 않은 팩스(2211만6000건·25.7%)가 뒤를 이었다.
보험 소비자들의 간소화 요구 목소리는 크다. 인수위가 지난달 14개 생활밀착형 과제의 우선 시행순위를 조사한 결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4323명 중 2003명(5개 항목 복수응답) 선택을 받아 1위로 꼽혔다. 그러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논의에 진전은 없다.
한국의 보험금 청구 시스템은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의 제도개선 권고 이후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프랑스에는 의료기관과 건강보험공단, 보험회사가 서로 연결된 전자정보전송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보험사들은 의료계 반발을 핑계로 대고 있지만 불편한 청구 시스템을 내심 즐기는 모양새다. 인수위 관계자는 “결국 전산화 지연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4000만명에 육박하는 실손보험 가입자들”이라며 “정부·여당이 의지를 갖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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