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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발자취 따라 ‘창덕궁 달빛기행’… 고궁의 밤 정취에 흠뻑


고즈넉한 고궁을 달빛 아래 만끽할 수 있는 ‘창덕궁 달빛기행’ 행사가 오는 21일부터 6월 12일까지 매주 목~일요일 진행된다. 밤에 만나는 고궁은 낮과 또 다른 느낌이다. 밤의 적막함 속에서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하늘로 뻗어있는 처마의 곡선이 조명 때문에 더 아름답게 돋보인다. 은은한 달빛 아래 어우러진 녹음을 즐길 수 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와 한국문화재재단이 진행하는 달빛기행의 회당 관람 인원은 25명, 관람 시간은 100분이다. 지난 19일 달빛기행 사전행사를 찾았다. 전문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리시버를 받아 목에 걸고, 밤길을 비춰줄 청사초롱을 한 손에 들었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시끄러운 도심이 뒤로 멀어졌다. 4월의 선선한 밤바람이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600년 역사의 돌다리 금천교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고궁 탐방이 시작된다. 임금이 지나다니던 길인 ‘어도’를 지나 창덕궁의 유일한 국보 인정전을 만났다. 여기서 즉위식이나 태자 책봉식 같은 주요 행사가 이뤄졌다. 인정전 마당인 조정에는 문무대관들의 품계석이 즐비했다.


인정전을 지나서 만난 희정당은 조선 시대 왕과 왕비가 생활하던 창덕궁 내전이다. 최근 전등과 전기시설 정비를 마치고 이번에 처음 야간 개장을 했다. 1920년대식의 각종 조명과 화려한 샹들리에를 볼 수 있다. 희정당 옆에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던 낙선재가 있다. 덕혜옹주가 1989년까지 머물던 곳이다. 창호지 너머로 새 나오는 불빛이 고택의 정취를 느끼게 했다. 창문마다 각기 다른 창살 무늬를 구경하는 것도 묘미다. 낙선재의 위쪽에 자리 잡은 상량전은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곳이라 임금이 자주 찾았다고 한다. 이곳에 들어서니 아름다운 대금 연주 소리가 방문객을 반겼다. 상량전은 평소 개방하지 않고, 달빛기행 때만 공개한다.


왕실 가족이 밤의 산책을 즐긴 후원은 창덕궁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다. 후원의 꽃인 부용지(연못)에는 지붕 처마가 사방으로 뻗어 연꽃을 닮은 부용정이 있다. 부용지 가운데에는 네모난 섬이 있다. 연못은 하늘, 섬은 땅을 의미한다. 건너편에는 규장각이 달빛을 받아 아름답게 서 있었다. 부용지 앞에 서서 달빛과 사색 즐기는 임금의 모습을 떠올렸다. 실제로 여기선 ‘왕가의 산책’ 이벤트가 진행된다. 전문 배우들이 왕과 왕비, 시중을 드는 신하로 분장을 하고 관람객과 사진 촬영을 한다.


달빛기행의 매력은 어둠 속에 흩날리는 전통 악기의 소리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영조가 직접 현판을 쓴 영화당에서는 거문고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숙종의 연꽃 사랑을 담은 애련정에서는 밤의 적막을 뚫고 나오는 구성진 가곡 소리를 음미할 수 있었다. 다양한 경사가 열리던 연경당에서는 달빛기행의 백미인 궁중무용 공연이 펼쳐졌다. 이날 사전행사에 초청받은 외국인 유실라(44)씨는 “창덕궁은 낮에만 왔었는데 밤에 오니 전통악기의 아름다운 소리와 전통 공연을 볼 수 있어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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