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과 공급망 병목현상 등으로 촉발된 물가 상승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임금 인플레’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원자잿값 상승이 물가를 높이고, 기업의 임금 인상 및 추가 물가 상승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시나리오다. 임금 상승은 기업의 고정 비용을 증대시키는 장기 충격 요인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임금 상승에 대처를 잘하는 기업이 향후 주가가 오를 여력이 있다고 분석한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외 노동계에서 임금 인상 요구는 거세다. 지난달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올해 임금 인상 요구율을 8.5%로 확정했다. 2018년(9.2%) 이후 4년 내 최고 수준이다. 카카오 등 대기업들은 잇따라 임금을 큰 폭으로 올리며 보상을 강화하고 있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미국의 지난달 임금은 전년 동기 대비 5.8% 올랐다. 1997년 이후 가장 높은 상승 폭이다.
기업의 인건비 구조와 노동집약도는 임금 인플레 시대에 실적과 주가에 영향을 끼친다. 임금은 한번 오르면 떨어지기 어렵다는 속성 때문에 장기적 충격으로 분류된다. 1997년 외환위기 정도의 충격이 아니고서는 인건비 지출이 유의미하게 감소하긴 어렵다.
비용의 증가는 고스란히 수익 악화로 이어진다. 2018년 최저임금이 전년 대비 16.4% 올랐을 때 편의점 기업의 주가는 큰 타격을 받았다. 늘어난 최저임금이 비용으로 잡혔고 투심도 악화됐다.
반대로 인건비 부담이 조정 가능한 기업은 상대적으로 임금 인플레의 충격을 피해 갈 수 있다. 김민규 KB증권 연구원은 “직원 입장에서 좋은 기업은 꾸준히 물가 상승률보다 높게 임금을 올려주는 회사일 것”이라며 “하지만 주주에게 좋은 기업은 호황이 와도 인건비 지출이 크게 늘지 않고, 불황이 오면 인건비를 줄이는 회사”라고 말했다.
KB증권이 최근 10년 매출액과 인건비 및 복리후생비 증가율을 분석한 결과 LG화학은 직원에게, 대한항공은 주주에게 유리한 회사로 나타났다. LG화학은 매출 감소에도 인건비를 늘렸고 업황 개선 시 성과를 직원과 나눴다. 반면 대한항공은 매출이 늘어나도 인건비 증가율은 높지 않았다. 불황이 닥쳤을 때는 인건비를 줄이는 게 가능했다. 신세계도 호황기에 인건비 상승이 매출 상승보다 느린 것으로 드러났다.
업종별로는 노동집약도가 높은 통신, 소매(유통), 미디어, 교육 등이 임금 상승에 취약할 것으로 분석됐다. 노동집약도가 높을수록 같은 이익을 창출하는 데 인건비가 많이 들어간다. 반도체, 유틸리티, 에너지 등은 인건비 투입이 낮은 편이었다.
다만 김 연구원은 “회사가 성장하는데 직원에게 소홀하면 생산성이 악화되고 성장 동력도 떨어질 수 있다”며 “흑백 논리로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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