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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결정적 순간들…‘위기의 연속’ 극적 단일화로 승기 굳혔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선 하루 전날인 8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마지막 유세를 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검찰총장직에서 사퇴한 것은 지난해 3월 4일이었다.

그는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면서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라며 총장직을 던졌다. 정치권에서는 윤 당선인이 정계에 진출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당시 높은 국민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대선 승리 가능성에는 물음표가 많았다. 정치적 경험도, 세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 당선인은 대권을 차지했다. 검찰총장을 지냈던 인사가 자진사퇴 이후 1년 만에 대선에서 승리한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한 일이었다.

이는 그만큼 위기의 연속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윤석열 당선인이 2021년 3월 4일 검찰총장직을 사퇴하면서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에서 직원들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권현구 기자

정치적 경험·세력 없던 윤석열, 제1야당 대선 후보로

윤 당선인은 지난해 6월 29일 정치 참여를 선언하며 대권 도전을 공식화했다.

그가 ‘광야’로 나온 배경에는 국민적 지지가 있었다.

하지만 대권 도전 뒤 검증 국면에 직면했다. 30%대의 높은 여론조사 지지율은 지난해 7월 10% 후반대로 급락했다. 여권 등의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실망감도 번져갔다.

윤석열 당선인이 2021년 8월 2일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하며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준석 대표와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 최종학 선임기자

타개책은 전격적인 국민의힘 입당이었다.

윤 당선인은 지난해 7월 30일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 입당해 여권의 공세에 대항할 ‘방어막’을 마련했다.

그러나 대선 후보 경선도 난관이었다.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등 경쟁 주자들에게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윤 당선인은 높은 지지율로 ‘대세론’을 구축하는 듯했으나 홍 의원이 2030세대의 지지를 무기로 윤 당선인의 독주 체제를 위협했다.

‘손바닥 왕(王)자’ 논란, ‘전두환 옹호 발언’ 논란, ‘개 사과’ 논란 등이 잇따라 터졌다.

말실수도 겹쳤다.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던 경선판이 요동쳤다.

하지만 윤 당선인은 지난해 11월 5일 최종 득표율 47.85%로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해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뒷심을 발휘하며 41.50%를 기록한 홍 의원을 6.35%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대권 도전 129일 만이었다.
윤석열 당선인이 2021년 11월 5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 두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반짝 ‘컨벤션 효과’ 뒤 당 내홍…김종인과 결별

윤 당선인은 후보 선출 이후 ‘컨벤션 효과’를 누리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의 격차를 벌려 나갔다. 당내에서는 “승기가 굳어졌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또 악재가 터졌다. ‘원톱’으로 선거대책위원회를 이끌 것이라고 전망됐던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이 선대위 인선 갈등으로 합류를 보류했다.

이준석 대표는 ‘패싱’에 반발해 ‘잠행’에 들어갔다. 당 내홍이 폭발하면서 선대위 출범은 미뤄졌다.

윤석열 당선인과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이 2021년 11월 24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만나 만찬 회동을 하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선대위를 처음부터 출발을 잘해야 하지, 잡음이 생겨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만 남겼다. 연합뉴스

선대위는 지난해 12월 3일 ‘울산 회동’ 뒤 김 전 위원장과 이 대표가 합류하며 같은 달 6일 간신히 출범했다.

그러나 15일 만에 이번에는 ‘윤핵관(윤석열 대선 후보 측 핵심 관계자의 준말)’ 논란이 터지면서 이 대표가 상임선대위원장직을 던졌다. 부인 김건희씨의 허위경력 의혹까지 터져 나왔다.

윤석열 당선인이 2021년 12월 3일 울산 울주군의 한 식당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의 만찬회동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윤 당선인은 지난 1월 5일, 대선을 63일 남긴 상황에서 선대위 해체를 결정했다. 규모만 크고, 대응은 느리다는 비판을 받았던 선대위를, 슬림화한 선대본부로 대체했다.

윤 당선인은 이어 이 대표와의 갈등을 극적으로 봉합하고, 김 전 위원장과는 결별을 선택했다.

“김 전 위원장이 없이 대선을 치를 수 있겠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윤 당선인은 “국민이 기대하셨던 처음 윤석열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윤석열 당선인이 2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단일화 협상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변수로 떠오른 야권 후보 단일화

지난 1월 7일 공개된 윤 당선인의 지지율은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26%였다.

대선 후보 선출 직후인 지난해 11월 19일 한국갤럽의 4자 구도 조사 당시 지지율은 42%였다. 49일 만에 16%포인트가 빠진 것이다.

지난 1월 7일 갤럽 조사에서 이재명 후보는 지지율 36%를 기록하며 윤 당선인을 10%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그 사이 국민의당 대선 후보로 나선 안철수 대표는 지지율 15%로 치고 올라왔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 내부에서 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 논의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이 시점이다.

윤 당선인은 단일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난 2월 7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단일화를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최진석 국민의당 상임선대위원장이 윤 당선인에게 직접 전화해 단일화 가능성을 타진한 것도 이날이었다.

윤석열 당선인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3일 단일화를 극적으로 성사시키며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함께 만세를 하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사전투표 하루 전 이뤄진 극적 단일화

단일화는 녹록지 않았다.

안 대표는 지난 2월 13일 여론조사 단일화 제안을 던졌다. 그러나 윤 당선인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안 대표는 일주일 뒤인 지난 2월 20일 제안을 철회하며 완주 의사를 밝혔다. 단일화는 물 건너가는 듯했다.

윤 당선인 측의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과 안 대표 측의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이 꾸준히 물밑 협상을 진행했지만 대선 투표용지 인쇄를 하루 앞둔 2월 27일에도 단일화 담판은 불발됐다.

단일화는 최종 결렬된 듯 보였지만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 3일 극적으로 단일화 협상이 타결됐다.

장 의원과 이 의원이 2일 마지막 법정 TV토론을 마치고 윤 당선인과 안 대표의 만남을 타진했다.

윤 당선인과 안 대표는 장 의원 매형인 성광제 카이스트 교수의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만나 2시간 30분 만에 단일화에 합의했다.

안 대표가 사퇴하고 윤 당선인으로 단일화를 하기로 결론 내렸다.

윤 당선인과 안 대표는 3일 오전 단일화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함께 포옹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이 순간이 20대 대선의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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