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보건 위기 속에 엄밀한 검증 없이 ‘약장수’ 노릇을 하고 있다는 점이 통계로 증명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효능이 뛰어나다고 언급한 약물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검증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부작용 우려까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의료정보 분석업체 IPM.ai에 의뢰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부터 말라리아 치료제인 클로로퀸과 하이드로클로로퀸의 효능을 “매우, 매우 좋다더라”라고 언급한 이후 전국 소매약국 처방이 평일 평균보다 46배 증가했다고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류머티즘, 심질환, 피부병, 정신질환뿐만 아니라 심지어 족병 전문의까지 의료 전 부문에 걸쳐 그날 무려 약 3만2000건의 클로로퀸, 하이드로클로로퀸 처방을 남발했다.
해당 약물들의 처방은 지난달 후반기 내내 치솟았다.
인구 대비 처방 규모를 보면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큰 뉴욕주, 뉴저지주에서 크게 나타났다.
조지아주, 아칸소주, 켄터키주에서도 인구 대비 처방건수가 많았고 절대치로 본 처방 규모는 캘리포니아주, 워싱턴주 등 코로나19가 다른 지역보다 일찍 발병한 곳들에서 크게 확인됐다.
플로리다주는 인구 대비나 절대 처방건수 모두 가장 컸는데 1000명에 1명꼴로 클로로퀸과 하이드로클로로퀸을 처방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화상으로 중계된 백악관 브리핑에서 클로로퀸, 하이드로클로로퀸이 코로나19를 치료하는 데 “매우, 매우 희망적인 결과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1일에도 트위터를 통해 “하이드로클로로퀸과 항생제인 아지트로마이신을 함께 투여하면 제약 역사상 가장 큰 게임체인저(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게임체인저’ 발언이 나온 그날 소매약국에서 관측된 클로로퀸, 하이드로클로로퀸의 처방 건수는 평일 평균보다 무려 115배로 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들어 이달 13일에도 “결과가 매우 좋다더라”며 코로나19 치료제로서 클로로퀸과 하이드로클로로퀸을 호평했다.
이후 의약 전문가들이 부작용 가능성을 경고했음에도 이달 두 번째 주까지도 클로로퀸과 하이드로클로로퀸에 대한 처방 규모는 평소보다 6배나 높게 지속되고 있다.
의약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성급한 발언과 대중의 격렬한 반응을 보며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카먼 캐티존 미국약국경영자협회(NABP) 전무이사는 “35년간 약업에 종사하면서 백악관 얘기에 사람들이 저런 식으로 반응하는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
캐티존 이사는 “처방 급증 때문에 공급 부족이 발생하면 클로로퀸과 하이드로클로로퀸에 의존해야 하는 환자들이 위험해진다”고 걱정했다.
심지어 식품의약국(FDA)마저 우려를 나타냈다. FDA는 하이드록시클로로퀸, 클로로퀸에 심각한 부작용 가능성이 있다며 병원이나 임상 시험에서만 쓰여야 한다고 지난 24일 권고했다.
전문가와 당국의 우려 속에도 무허가 ‘약장수’와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멈추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 브리핑에서 표백제와 살균제가 바이러스를 없앤다는 연구 결과에 흥미를 보이며 살균제를 인체에 주사하거나 폐에 흡입하도록 하는 방안을 권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살균제를 부적절하게 사용해선 안 된다고 트위터로 경고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저 농담이었다고 뒤늦게 변명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미 공영라디오 NPR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TV에 돌팔이 약장수가 나온 것 같다. 폐에 살균제를 주입하자고 떠들지 않나”라고 강력하게 규탄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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