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식의 성서’로 불리는 미슐랭(미쉐린) 가이드가 최근 한국에서 공정성 논란 끝에 법적 분쟁으로 확대된 가운데 프랑스에서도 유명 요리사가 평가 이유를 밝히라는 소송이 본격 시작됐다. 이번 소송으로 미슐랭 가이드가 영업기밀로 고수하는 평가 기준이 밝혀질지 관심이 쏠린다.
CNN 등은 27일(현지시간) 프랑스의 스타 셰프인 마르크 베라가 오트 사부아에 있는 자신의 식당 ‘라 메종 데 부아’가 지난 1월 최고등급인 별 3개에서 별 2개로 강등되자 법원에 미슐랭 가이드가 평가 사유가 적힌 서류를 넘기도록 강제해달라며 제소했다. 당시 미슐랭 가이드를 상대로 요리사가 소송을 제기한 것은 처음이어서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었다.
미슐랭 가이드는 프랑스 타이어 회사 미슐랭이 1900년부터 매년 발간하는 여행·식당 안내서로 엄격한 심사 아래 최고의 레스토랑에 별 1~3개를 부여한다. 별 3개짜리 식당은 전 세계 50여곳뿐이다.
베라의 변호인은 이날 열린 첫 공판에서 “미슐랭 가이드의 평가단이 수플레 요리에 영국 치즈를 재료에 사용한 점을 문제 삼았으나 이 요리에는 프랑스 알프스 지역에서 생산하는 두 종류의 치즈만 들어간다”고 강변했다. 수플레는 거품을 낸 달걀 흰자에 치즈와 감자 따위를 섞어 틀에 넣고 오븐으로 구워 크게 부풀린 요리다. 변호인은 베라의 레스토랑에서 수플레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공개한 뒤 “평가단원의 이름과 신상 자료 및 이들이 식당을 실제로 방문했는지를 증명할 수 있는 모든 점검 자료를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미슐랭 가이드의 변호인은 “평가단의 신상을 익명으로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익명성이 사라지면 비평도 함께 사라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베라의 자존심을 충족하려고 고용주에게 고용인을 태우라고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검은색 챙 넓은 모자를 트레이드마크처럼 착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베라는 앞서 CNN과 인터뷰에서 2스타로 강등된 후 6개월간 우울증을 앓았으며 식당의 팀원들이 다같이 울었다고 밝혔다. 유명 셰프들이 미슐랭 가이드의 평가에 압박을 느낀다고 밝힌 것은 처음이 아니다. 프랑스의 유명 셰프였던 베르나르 루아조는 지난 2003년 자신의 레스토랑이 별 3개에서 별 2개로 떨어질 거라는 소문이 돌자 자살을 하기도 했다.
이런 압박감 때문에 유명 셰프들이 미슐랭 가이드의 별을 포기하는 사례가 2005년 처음 시작돼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17년에는 10년 넘게 별 3개를 유지해온 프랑스 제과 요리사 세바스티앙 브라가 반납을 선언했다. 최근 별을 포기하는 셰프들은 주로 30~40대의 젊은 층이다. 이들은 “10년 전까지 미슐랭은 축복이었지만, 요즘 같은 불황엔 운영비만 높이는 저주”라고 입을 모은다. 앞서 CNN은 이런 현상에 대해 “요식업계 엘리트주의를 거부하는 ‘세대적 분노’”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편 한국에서는 ‘미슐랭 가이드 서울’ 발간과 관련해 레스토랑 선정을 둘러싸고 금품 수수 등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이에 대해 미쉐린 코리아 측은 부인하고 있지만 레스토랑 및 소비자단체 사이의 법적 분쟁으로 사태가 확대될 전망이다. 여기에 미슐랭 가이드 제작에 20억원을 지원해온 한국관광공사 등 정부 산하기관은 일방적인 ‘갑질 계약’을 당했다는 의혹과 비판을 받고 있다. 소비자 연대 역시 검찰 고발을 예고한 상태다.
그리고 별 1개를 받은 한국의 어윤권 쉐프는 지난 15일 자신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낮은 등급으로 평가돼 “미슐랭 측에 심사 기준과 방법 등을 명확히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등재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등재됐다”며 미슐랭 가이드 측을 모욕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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