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란색과 초록색, 보라색·갈색 등 형형색색의 상자들이 레일 위를 타고 흐른다. 바코드 스캐너가 ‘삑’ 하는 소리와 함께 목적지를 지정하면 노란색 크레인들이 최대 60m 높이에 있는 빈 공간까지 상자들을 실어 나른다. 위아래로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상자를 삼키고 뱉는 모습이 마치 엘리베이터가 사람을 태워 나르는 것 같다.

지난 1월 30일 인천 서구의 화장품 용기 제조사 ㈜연우의 물류센터를 찾았다. 높이 60m, 면적 1983㎡(600평) 물류센터 내 사람이라고는 펌프형·튜브형 화장품 용기 등을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이 담긴 상자를 레일 위에 올리는 협력사 직원 3~4명뿐이었다. 여러 사람이 물건을 옮기느라 분주한 여타 물류센터의 모습과는 대조됐다. 이동수 연우 경영정보팀장은 “자동 창고관리시스템(WMS) 도입 이후 물류 이동·관리 등에 필요한 인력의 60%를 생산 또는 품질 관련 부서로 옮겼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연우는 2014년 말부터 스마트공장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스마트공장은 재고관리, 생산, 물류, 판매 등 공장 운영 전반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것이다. 스마트공장의 일종인 WMS도 지난해 3월 80억원을 들여 완성했다.
연우는 국내외에서 알아주는 기업이다.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은 물론 세계적인 화장품 기업 로레알과 에스띠로더, 시세이도 등 세계 100대 화장품 기업의 50%가 연우의 고객사다. 잘 나가는 기업이 스마트공장 구축에 사활을 건 까닭을 묻자 이 팀장은 “과거 방식으로는 더 이상 회사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운영 방식을 모두 뜯어고쳐서라도 효율성 확보가 시급하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이다.
우선 화장품 용기 자재를 생산하는 공정 중 첫 과정인 사출 라인부터 손봤다. 협력사들이 실시간으로 연우의 발주 현황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자재 생산 속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이 팀장은 “몇 년 전만 해도 우리 구매팀이 전화나 팩스를 통해 각 협력사에 일일이 발주를 요청했다”며 “이 작업에만 1~2일이 걸렸는데 이제는 몇 분이면 된다”고 설명했다.
6억원을 투자해 금속 화학연마 라인에 로봇도 도입했다. 덕분에 직원이 황산 등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불량률은 줄였다. 과거 2.7%이던 불량률은 로봇 도입 이후 0.12%까지 내려갔다. 불량률이 96% 떨어진 셈이다. 로봇 도입으로 기존 7명이던 직원 중 4명을 생산 및 품질 관련 부서로 재배치해 보다 효율적인 인력 활용이 가능하게 됐다.
이밖에 회사 정보를 통합·관리하는 디지털 생산관리시스템(MES)을 구축해 생산 계획·실적 관리·품질 관리·금형과 설비 관리 등을 시작했다. 또 기업자원관리 프로그램(ERP)을 도입해 현장 업무프로세스에 대한 지식을 암묵지(학습과 경험으로 체화되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노하우)에서 형식지(문서나 매뉴얼처럼 외부로 표출돼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지식)로 전환시켜 직원들 간 소통을 강화했다.
스마트공장 도입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공장가동률이 도입 전과 비교해 평균 10% 포인트 가까이 상승했다. 효율성이 높아지니 자연스레 매출이 늘었다. 2014년 1687억5900만원이던 매출은 2018년 2729억원을 달성했다. 같은 기간 직원 수도 1271명에서 1572명으로 증가했다. 스마트공장이 일자리를 줄일 수 있다는 편견을 깨는 수치다.
이 모든 일은 연우 혼자만의 힘으로 해낼 수 있던 것은 아니다. 스마트공장 도입에는 정부와 대기업의 전폭적인 협조가 있었다. 이 팀장은 “로봇을 도입할 때 정부로부터 3억원을 지원받았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로부터는 스마트공장 전문가를 지원받아 약 4개월간 사출·금형 관련 노하우와 규격과 용어 표준화 작업에 도움을 받았다.
연우는 오는 5월 도입을 목표로 총 7억3000만원을 들여 제품수명주기관리(PLM)와 생산계획지동화시스템(APS)을 구축하는데 한창이다. PLM을 통해 설계부터 제품 생산에 이르는 전 과정을 일괄적으로 관리해 제품 부가가치는 높이고 원가는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 APS를 이용해 제품 주문부터 발주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할 계획이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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