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가 7일 “부디 더는 사람을 해하는 폭염이 내리쬐지 않기를 바란다”며 온열질환의 심각성을 알리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이렇게 많은 열사병 환자는 의사 생활 이후 처음이다. 극심한 더위가 조금 지나갔으니 이제 차분히 정리를 해보겠다”고 글을 시작했다.
남 교수는 최근 온열질환 때문에 내원했던 환자 16명을 나열했다. 온열질환은 무더운 날씨에 무리한 외부 활동으로 발병한다. 일사병, 열사병, 열실신, 열경련, 열탈진 등으로 나뉜다. 남 교수가 언급한 환자 중 가장 많은 연령대는 80대(8명)였다. 이 중 폐지를 줍다 응급실에 이송된 환자가 3명이었다.
남 교수는 “비슷한 환자가 많이 오길래 검색해서 폐지 가격이 1㎏당 50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 사회학자가 우리나라에 폐지 줍는 노인이 175만명이라고 주장한 것도 봤다”면서 “살인광선 아래서 여기 실려 올 정도로 일해야 했던 사람들을 생각해봤다. 선선해지면 주우시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80대 환자 가운데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도 있었다. 길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된 환자였는데 혈압, 당뇨, 치매, 파킨슨병 등을 앓았다고 한다. 남 교수는 “호전될 가망이 없어 사망이 확정적인 상태로 퇴원했다”고 설명했다.
지적장애가 있던 50대 남성은 외출 후 실종됐다가 외진 등산로에서 발견됐다. 남 교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실종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건강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졌고 결국 숨졌다”고 했다. 노숙자로 추정되는 60대 남성의 경우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서 전신 경련을 일으키는 상태로 발견됐다. 남 교수는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로, 확실히 사망이 예견된다. 혹은 지금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숨진 채 발견된 경우도 있었다. 반지하방에 살던 90대 노인이었다. 발견 당시 체온은 42도였다고 한다. 남 교수는 이밖에도 에어컨 없는 방에서 동료들과 단체 생활하는 30대 중국인 노동자, 선풍기도 고장난 집에서 기절한 채 발견된 80대 여성 등을 열거했다. 그는 “비슷한 경우는 언급하지 않은 것도 많다”며 “사람들은 지금도 계속 내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남 교수는 “이번 폭염은 예측하지 못한 바가 컸다. 갑작스러웠기에 충분한 대처가 이뤄지기 어려웠다. 의사들도 예상하지 못한 상태로 몰려오는 환자를 맞이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열사병은 전형적으로 사회경제적 위기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직면한 질병”이라며 “거의 이들만이 고통받는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지적장애, 폐지, 80~90대, 노숙자, 반지하 등의 단어를 읽고 있자면 매년 가장 먼저 고통받을 이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할 것은 분명해진다. 이들은 햇볕이 내리쬐고 의식이 가물거리는 위기에서도 한마디 못하고 매년 쓰러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 교수는 “분명 우리나라의 폭염은 이와 비슷하게 계속되거나 더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한 뒤 “이 환자군도 매년 똑같이 응급실을 찾을 것이다. 나는 이 사람들을 계속 보고 있어야 할까. 부디 더는 사람을 해하는 폭염이 내리쬐지 않기를,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고통에서 먼 사람들이 대신 내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남 교수는 지난 2일에도 비슷한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다. 그는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한마디 해야겠다. 현재 응급실은 열사병 환자 천지”라며 “지금 노약자에게 실외는 무작위로 사람을 학살하는 공간”이라고 경고했다. “누가 발견하지 못하면 바로 사망으로 직결된다. 발견돼도 사망률 50~90%다. 쉽게 말하면 뇌가 익는 병”이라고도 했다.
또 “여기 있다 보면 바깥은 살인광선이 내리쬐는 전쟁터 같다”며 “주변 어르신들에게 전화해 외출 자제하시라고 해달라. 건강한 사람들이 노약자를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남 교수가 7일 게시한 글은 8일 오후 3시20분 기준 약 1만9000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앞서 올린 게시물은 같은 시각 좋아요 6만9000개를 얻었다. 한 네티즌은 “환자 사례를 읽어내려가니 가슴이 먹먹해진다”면서 “사무실에 쏟아지던 시원한 바람을 ‘저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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