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61. 출생의 비밀을 둘러싼 복수극 ‘21세기 살인자, 이혈(異血)’

Է:2018-05-08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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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살인 ‘복수극’ 만화 같은 현실, 현실 같은 만화 풍경


연쇄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 영화·TV드라마 범죄 스릴러물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시청자 반응도 좋다. 영상으로 펼쳐지는 박진감 넘치는 현장은 형사와 동일한 감정이 충돌된다. 공포·잔혹·섬뜩한 폭력으로 치닫는 스토리면 긴장 속도를 높인다. 허구 세계보다 현실은 더 잔혹한 연쇄 살인사건이 펼쳐지고, 살점이 찢어지는 사이코패스의 잔혹한 범죄 폭력성은 현실과 허구의 세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이러한 연쇄살인범을 다룬 이야기는 감독 시선으로 인물의 섬세한 표정과 내면의 칼날 같은 욕망을 담아낸다. 쇼트(Shot)로 쪼개져 감정을 영상미를 확장하고, 섬세한 미장센들이 결합되어 현장을 실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킨다. 그런데, 연극으로 풀어내기에는 복잡해 진다. 연극은 한정된 무대공간에서 입체적으로 장면을 분할하고 대소도구를 배치해 등장인물로 분한 배우의 살아 숨 쉬는 연기로 승부 할 수밖에 없다.

연극은 기술적인 편집성과 흥미를 더 할 수 있는 조작이 표현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연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해 무대구도를 연극으로 극대화 시키고 그려내면 영화·TV드라마 보다 더 흥미로워 진다. 제39회 서울연극제 공식 참가작인 박장렬 연출·김민정 작·극단 반 <21세기 살인자, 이혈 異血>(5월4일~13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 은 일본의 식민 통치를 옹호 하거나 친일(親日)적인 발언을 한 다섯 명의 피해자 혀를 자른 연쇄살인범 단설마(斷舌魔) 살해동기를 파헤친다. 극의 종점 에서는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참혹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역사의 살점까지 당겨진다.

‘잘못 태어난 사람들’, 거세 해야 할 혼혈의 핏줄


극단 반의 <21세기 살인자 이혈>은 일본 위안부 피해로 갈라진 두 개의 핏줄을 거세하는 복수극 형식으로 다룬다. 작가는 치욕스러운 한일역사를 만화 풍경으로 묶으면서 잘못 태어난 주인공 강준과 아버지 강한구의 핏줄의 역사를 중첩해 무대로 투영한다. 작가의 일본군 위안부역사성을 다루고 있는 전작<하나코>는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채 대한민국 사회를 떠돌고 있는 역사성과 일본군의 잔혹성,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피해 할머니들 삶을 온전히 다루었다면, 이 작품은 극 안에 만화작가인 주인공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이야기가 만화 스토리로 중첩되며 현실처럼 포개지는 무대전개가 흥미롭다.

<21세기 살인자 이혈>의 반전은 등장인물 부자의 (강준·강한구)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부분이다. 비밀의 종점은 잔인한 위안부역사의 폭력성이 숨 쉬는 시대까지 올라간다. 극중 인물 강준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된(강예분)으로 설정된다. 아버지는 일본군 피를 이어 받은 강한구(김준삼 분)이며 강준은 아버지의 복수로 과거 일본군 스즈키(신현종·정성호)의 딸을 복수로 겁탈해 태어난 아들이다. 주인공은 아버지 일기장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다. 만화작가 강준은 일기장의 가족사를 실제 만화 이야기로 그려지고 범인을 쫒는 무대는 만화 같은 풍경이 현실처럼 펼쳐진다. 그러나 만화작품은 강준의 자살로 미완으로 남게 된다.

무대를 살펴보자. <21세기 살인자, 이혈異血> 은 ‘용의자 Y’ 만화로 유명한 작가 극중 인물 강준(원종철 분)이 만화로 그려내는 범죄 스릴러물 제목이다. 연극은 그가 과다출혈로 사망한 사건현장에서 출발한다. 무대는 강준의 만화 작업실이며, 앞은 강준의 복수극이 진행되는 과거와 현재 공간이 중첩된다. 뒤편은 강준의 만화 같은 풍경이 벽화로 펼쳐지고, 복수극의 피해자들의 살해 동기가 목격되는 장소다. 무대 전체는 강준이 펼쳐 놓은 만화 같은 복수극이 현재와 과거를 넘다들며 다층적 장면으로 활용된다. 극의 시작은 만화 작업실에서 강준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현장으로 출동한 두 명의 형사(박찬국, 윤이준)는 타살로 추정하고 현장에 불쑥 나타난 프로파일러(권기대 분)는 작업실 화재현장 흔적과 과다출혈의 정도, 외부 침입자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 사인(死人)에 불길 흔적이 없다는 것과 만화작품 <21세기 살인지 이혈> 원고가 불에 타 버려졌다는 점으로 그의 죽음을 자살로 추정한다. 형사와 프로파일러는 그의 작업실에서 미로 같은 통로를 발견하게 되고 벽면에는 그가 세상에 발표하려고 한 신작 만화 <이혈> 작품의 스토리가 벽화로 섬세하게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형사와 프로파일러는 작품제목이 왜 <이혈>일까, 라는 의문에 빠진다. 순간, 무대는 마치 죽은 강준이 만화를 뚫고 현실로 튀어나온 것처럼, 강준의 시선은 과거현재로 넘나들며 만화 이혈의 이야기가 무대에서 펼쳐진다. 마치 만화 작가가 그의 이야기를 무대로 재현하는 것처럼. 강준의 복수극은 강준의 출생의 비밀과 뒤섞여져 만화 <21세기의 살인자 이혈>의 스토리는 현실풍경으로 투영된다.

출생의 비밀을 둘러싼 강준의 복수극

강준이 신작으로 발표하려고 했던 ‘이혈’은 출생의 비밀을 둘러싼 복수극이다. 강준은 할머니 때부터 잘 못 태어난 아버지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풀고, 복수 해나가는 과정을 만화로 그려 놓았다. 관객은 만화스토리를 극으로 전개해 나가는 것인지, 강준의 사실적인 실제 복수극을 몰고 가는 것인지 이때까지만 해도 궁금해진다. 시선을 무대로 집중한 채 만화야? 실제야?를 반복하게 만든다. 반전을 서두르지 않고 초반에는 강준의 아버지의 시선과 강준의 친모 에이코(권남희 분)의 관계구도와 복수의 욕망을 내뿜는 극중 인물 내면의 풍경만을 교차적인 시선(극중 인물 강준, 강한구, 에이코)을 담으며 복수극의 흥미로움을 유지한다.

극으로 포개지는 <21세기 복수극 이혈>의 만화 스토리는 이렇다. 한·중·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타인에 상해를 가하지 않고 얼굴과 입을 공격해 혀를 끊는 잔인한 행위로 단설마라는 별명이 붙게 된다. 피해자 공통분모는 친일성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살해 동기가 밝혀지는 장면은 이렇다. 정윤식(김천 분)은 “위안부 문제는 이미 1970년대 한일협약을 통해 끝났고, 일본 대사관 앞에 가면 수치스러움을 느낀다”고 말하고 일본 기업 후원금으로 국내정치를 노리는 인물이다.

두 번째 피해자 주창현(이재영 분)은 “일제 강점기는 우리에게 근대화를 앞당기게 한 눈부신 개화기 였다”고 말한다. 극중 인물 이병훈은 위안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보고 욕설로 댓글을 달아 강준에 표적이 된다. 네 번째 피해자는 이춘영(이가을 분)은 가라오케, 스시, 사쿠라 등 대표적인 일본문화를 연계해 사업을 하는 인물이고, 연예인 신예림은 일본진출을 위해 예능방송에서 ‘기미가요’를 불러 표적이 된다. 강준이 만화로 펼쳐 놓는 살해 동기는 피해자 모든 친일파, 친일행적, 위안부 관련 피해 할머니들에게 망언을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혀를 자르는 것으로 설정된다. 강준은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그의 부모(에이코와 강한구) 까지 거세한다.

연극은 작가 강준이 자살 뒤 예측이라도 한 듯 형사와 프로파일러가 그의 출생의 비밀과 범죄 행위를 파헤쳐 나가는 현실을 꿰뚫고 있는 시선으로 만화로 투영시켜 놓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 설정이다. 연극은 강준의 만화가 현실풍경으로 무대로 투영되면서 강준의 출생의 비밀과 복수로 치닫는 사건을 쫒아가는 만화 같은 풍경이 시공간을 넘으며 펼쳐진다. 연출은 장면을 교차적으로 섞어 강준의 출생의 비밀이 재현되는 장면까지는 긴장감을 유지시키며 복수극의 종점으로 향하게 한다.

그런데 복수극이 흥미롭다. 광기와 사회적인 분노로 치닫는 묻지마 식 살인이나 원한관계나 치정관계로 인한 복수극이 아니라는 점이다. 강준의 복수극 종점은 아버지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이다. 잔혹한 위안부의 폭력의 역사는 피의 복수로 이어지고, 섞이지 말아야 할 핏물은 또 다른 복수의 혼혈로 태어난 강준이 그 핏줄을 거세해 나가는 가족사(史)다. 복수로 혈전된 두 개의 피가 흐르지 못하는 이혈의 가족사는 잔혹한 역사의 폭력성 시대까지 올라간다.

강준의 가계도는 이렇다. 아버지는 극중 인물 강한구(김준삼 분)의 어머니(강준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다. 부친을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은 유일하게 남은 사진 한 장이다. 그 사진 속에는 소녀상 얼굴을 보이는 앳된 소녀(강예분)와 일본군 스즈키(신현종·정성호 분)가 함께 웃고 있는 흑백 사진 한 장이다. 극중 인물 강한구는 일본군에서 사업가로 성공한 스즈키를 찾아가 출생의 비밀을 밝혀 낼 사진을 건넨다.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것은 “소녀들(위안부)이 할 수 있는 신성한 의무를 다한 거지” 말에 강한구는 “섞일 수 없는 핏줄로 아들로 인정하지 못한 어머니의 복수” 라고 외치며 스즈키의 딸 에이코(권남희 ·김지은 분)을 강간하고 복수의 피로 태어난 아들이 강준이다.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강예분, 아버지는 일본군 피를 이어 받았고 강준은 복수의 피를 이어받은 가족관계를 형성시킨다. 무대는 아버지의 일기장을 통해 강준의 출생의 비밀과 에이코를 살해하는 만화 같은 복수극을 현재에서 과거로 이동하면서 잘못된 혼혈의 역사를 거세하는 복수의 현장을 쓸어 담고 극의 후반부는 강준의 만화풍경이 현실과 중첩된다.

작가는 에이코를 일본굴지의 외동딸로 살아가고 있고, 스즈키는 한국사회에 정치자금을 대는 친일의 혼혈성을 향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의 역사적인 문제가 여전히 정치적인 논쟁으로 청산되지 못하고 방향으로 잃고 있는 것은 건재한 친일의 권력성과 정치적 환경, 복잡한 정치적인 관계에서는 섞일 수 없는 핏줄의 역사와 과거청산을 거세할 수 없다. 마치 강준의 사인을 자살과 타살의 모호함으로 결론이 난 것처럼, 그의 죽음은 정치적인 타살이 될 수 있다.

연출은 복수극이 끝나고 가족사의 비밀을 밝혀지는 장면까지 극의 긴장감을 유지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치 소녀상을 무대로 소환한 것처럼 강준과 사진 한 장으로 포개진다. 복수의 칼날로 일어선 사진 속으로 걸어 들어온 김예분은 지켜야할 숭고함으로 장면을 고정시킨다.

작가의 시선 연출의 관점

만화 같은 혼혈의 핏줄로 얼룩진 암울한 시대의 가족사를 거세하는 복수극으로 이야기를 좁혔으면 작품이 반감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상상력과 발칙함이 발휘되는 부분은 강준 의 직업을 만화가로 설정하고 그의 자살과 복수극을 발표하려는 미완의 만화 스토리로 둔갑시키고 만화 같은 현실 풍경이 제기하고 있는 시선이 한국사회를 향한 문제제기로 녹아 있다는 점이다.

작품을 현실감 있게 바라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많다. 우선 여전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청산되지 못하고 있는 역사는 매듭을 풀어내야 할 숙제다. 또한 소녀상 철거 논란들이 정치적으로 훼손되고 있고, 피해자들을 향한 막말 발언과 한국사회에 침제 되어 있는 친일파 논란, 여전히 일본을 대변하며 모호함으로 한국사회 정치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오늘날 민낮들을 쓸어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상을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날카로움이 <21세기 살인자 이혈>의 스토리가 황당한 만화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박장렬 연출은 무대공간을 다변화 시켜 극을 밀도 있게 끌고 가는 탄력이 돋보였다. <21세기 살인자, 이혈>은 강한구의 출생의 비밀이 스즈키를 만나면서 반전되는 부분과 강준의 출생의 비밀을 숨겨놓고 달리다가 복수로 태어난 에이코 아들이라고 밝혀지는 장면과 그녀를 타격하는 극적인 장면에서는 긴장감 있는 반전으로 전환시켰다. 마지막장면에서 소녀상과 강준을 소환해 여전히 동시대가 지켜내야 할 숭고함으로 장면을 포개 놓고 표현 한 것은 설득력은 떨어졌지만 연출 관점으로 전환해 강한 인상을 주었다.

마지막에 강준의 출생의 비밀과 내면을 무대 전체에 투사되는 대사 활자로 투영해 끝까지 극적인 긴장감과 안정된 속도를 유지한 것도 돋보였다. 그러나 에이코와 강준이 만나고 대립하는 장면과 사진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거 회상 장면(스즈키와 김예분의 만남) 장면 등에서는 음악의 차용이 과해 인물의 대사 전달이 다소 미온적으로 흘렀다. 그러나 극적인 긴장감과 템포를 높이며 극의 활력을 유지한 강준 역(원종철 분)의 연기가 자연스럽게 돋보였고, 아버지 강한구역에 김준삼은 정돈된 화술과 괴물로 태어난 아들의 고뇌를 연기로 잘 들어나게 했다. 형사(윤이준·박찬국 분)와 프로파일러(권기대 분)도 안정된 연기로 작품에 균형감을 형성했다. 연극적인 스릴러와 역사성까지 공감하고 싶다면 추천하는 연극이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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